靑·與·서울시, A씨에 '피해 호소인' 지칭
'왜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냐' 묻자
與 "특별한 입장은 없다, 대충 두 용어 통용"
진중권 "성추행 사실 인정할 의사 없다는 얘기"
영입인재 원종건 미투 의혹 때 '피해 호소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출신 A씨에 대해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 번 통렬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피해 호소인 뜻에 따라 사건 경위를 철저하게 밝혀달라"면서도 "당으로서는 고인 부재로 현실적으로 진상 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박 시장의 혐의는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 당의 광역단체장이 사임했다"고만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박 시장을 고소한 A씨를 두고 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와 정의당 등 범여권에서는 '피해 호소인'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권은 공식 석상에서 박 시장의 이름이나 '성추행'이라는 단어도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박 시장의 사망으로 사실관계를 가릴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지칭할 수 없다는 여권의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이틀 전인 지난 13일 MBC라디오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분의 피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전날(14일) 성명에서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와 비방, 모욕과 위협이 있었던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서울시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썼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전날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박 시장 조문 거부 논란에 사과하면서도 '피해 호소인'이라고 썼다. 여성운동가 출신인 남인순 의원도 이날 "피해 호소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남 의원은 '박원순계'로 통한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계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 호소 주장이 있다면 객관적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봐 왔다. 여권에서도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사실 확인이 없는 경우에도 '피해자'라는 표현을 써 왔다.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지난 5월 19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관련 국민청원 4건에 대해 답변을 하면서 1건에 대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확인이 되지 않았다"면서 "정부는 피해 아동 보호와 심리상담 등의 피해자 지원은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 수사로 사실 확인이 안됐음에도 불구 '피해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비서에 대한 강제추행으로 사퇴한 지난 4월엔 이인영 전 원내대표와 박주민 최고위원, 남인순 최고위원 등이 모두 '피해자'라는 말을 썼다.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이 '피해 호소인' 용어의 출처를 묻자 "사람에 따라 피해자라고 하는 분도,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는 분도 있다"며 "특별한 입장이 있지 않다. 대충 두 용어가 통용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지적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입장을 일방적 주장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피해 호소 여성'이 무슨 뜻이냐. 또다시 그 빌어먹을 '무죄 추정의 원칙'인가"라며 "피해자라는 말을 놔두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 쓰는 것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분 이름 공개하라"며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한다. 얄팍한 잔머리로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이며 아주 저질"이라고도 했다.
민주당은 총선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데이트 폭력 의혹으로 물러날 때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