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A씨는 지난 1일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 B씨를 불러내 강제로 차에 태운 뒤 두시간 동안 도로를 내달렸다. B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감금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지난달 23일에는 피해자 C씨로부터 강간 신고를 받은 경찰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주택가로 출동해 가해자이자 과거 연인이었던 D씨를 붙잡았다. C씨는 D씨가 과거에 찍은 동영상을 지워줄 것처럼 유인해 자신을 강간했다며 옛 남자친구를 경찰에 고소했다.

최근 연인 사이에 소리없이 이뤄지는 데이트 폭력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데이트 폭력을 단순 애정문제로 치부해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데이트 폭력이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만9940건으로 집계됐다. 2017년(1만4136건)과 비교해 2년만에 41% 증가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신고가 크게 늘어난 것은 연인들끼리의 일을 외부에 드러내는데 주저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적극적인 신고 문화가 뿌리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혐의 여부와 별개로 경찰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상담하는 분위기가 정착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이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신고건수가 증가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467명의 여성이 데이트 폭력 관련 강력 범죄로 사망했다. 한 달에 7명의 여성이 과거 연인이었거나, 사귀고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를 당한 것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지만, 근절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데이트 폭력은 주로 폭행, 감금 등에 그치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재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담뱃불로 몸을 지진 한 남성이 '특수상해 및 감금'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6개월이었다. 징역 6개월은 형량이 짧아 집행유예 처분과 함께 곧바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수사기관 등에서도 단순 애정문제로 인식, 개입을 자제하려는 경우가 잦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지난 3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사람 가운데 실제 구속된 가해자는 총 1259명으로 전체 인원(2만8915명) 중 4.4%에 불과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은 강력범죄 전조로 볼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남녀간 애정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로 봐 관대하게 처분하는 경향이 있다"며 "데이트 폭력은 사안이 가볍더라도 즉각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데이트 폭력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많다. 현행법에서는 데이트 폭력 위협을 느껴도 신체나 재산 등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가 있기 전까지는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도 받을 수 없다.

국내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경찰의 신변 보호를 법전에 명문화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9년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케이티법(Kaity's Law)'을 만들었다. 이 법의 제정은 케이티라는 이름의 미국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총으로 살해된 것이 발단이 됐다. 케이티는 살해를 당하기 전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신변 보호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은 있었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