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이스타 인수 시 부채비율 대폭 뛰어… "인수 재개 어려워"
이스타,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 조건 미충족

이스타항공 실소유주인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 일가가 전날(29일) 자신과 가족의 이스타항공 지분을 모두 헌납하겠다고 밝혔지만, 제주항공(089590)은 사전 협의 없는 일방 발표에 황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계속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인수대금을 포기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채가 2000억원이 넘는 이스타항공을 덜컥 인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즉시 제주항공은 물론 애경그룹까지 부실화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날 이상직 의원은 아들과 딸이 지분 100%를 보유한 이스타홀딩스의 이스타항공 지분 39.6%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으로의 매각이 성사될 경우 약 41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라 지분가치가 사실상 제로(0)라는 평가도 나온다. 빚을 제하고 나면 설령 매각이 성사된다 해도 실질가치는 230억원으로 그동안 누적된 체불임금 250억원보다도 적다.

최종구(왼쪽 두번째) 이스타항공 대표가 지난 29일 강서구 본사에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 대표 왼쪽은 김유상 이스타항공 전무.

◇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인수하면 부채비율 대폭 뛸 것"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일방 발표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이 논의 없이 일방적인 발표를 했을 뿐 우리에게 공문을 보내거나 공식적으로 요청해온 바가 전혀 없다"며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지분 헌납에 따라 계약 내용이 변경돼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래가 잘 되려면 기존 계약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우선이지 이런 일방 통보는 곤란하다"며 "맘대로 계약 내용을 바꾸고 그걸 받아들이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스타항공의 발표로 이미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제주항공(089590)내부 분위기를 한층 강화시켰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라 당초 꾀했던 ‘규모의 경제’는커녕 동반 부실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큰 이득이 없는 제안을 덜컥 내밀어 제주항공으로 공을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는 내부 의견도 나왔다.

이스타항공은 재무제표상으로는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금이나 항공기 리스비는 물론 임대료, 통신비(시스템 사용료) 등을 모두 체납하는 등 사실상 파산이 임박했다. 1분기 말 기준 부채는 2200억원에 이르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고, 운항 중단으로 매달 250억원의 빚이 새로 쌓이고 있다. 올해 말이면 부채는 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인수를 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비용 절감을 위해 리스 항공기 18대 중 5대를 반납했으며, 계약직을 포함해 약 350여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회생 가능성은 작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은 추가 자본 확충이 없으면 사업 면허까지도 박탈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자력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연내에는 새로운 인수 주체를 찾거나 자구노력으로 유상증자 등 자본확충을 해야 정상화를 꿈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리스료를 연체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경우 비행기를 다시 반납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일어날 수 있다"며 "이미 연체하고 있는 이상 신용에 불이익이 있어 앞으로 다른 비행기를 빌리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와 제주항공 여객기가 멈춰 서 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인수할 경우 부채비율 폭탄을 추가로 맞게 된다. 비상장사인 이스타항공은 일반기업회계를 채택하고 있는데, 제주항공으로 피인수되면 한국채택국제회계로 바꿔야 한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리스료를 영업비용으로 회계처리하고 있으나 회계기준을 바꿀 경우 모두 부채로 편입해야 한다. 제주항공은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483%로 비교적 관리되고 있으나 이스타항공을 계열 편입하게 되면 100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게 된다.

제주항공 역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1분기 당기순손실은 995억원으로 1000억원에 육박한다. 최근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1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주가 하락으로 유증 규모가 약 1585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자본 확충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 이스타, 협상 결렬 시 정부 지원 기대한다지만… 정부 "종결 안 되면 지원 없어"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끝내 인수 협상을 이어가지 않을 경우 정부 지원을 최후의 보루라고 여기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당장은 인수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자구책을 시행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마저도 이스타항공 뜻대로 되긴 힘든 상황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M&A가 종결되지 않으면 정책금융을 지원할 일이 없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은 기간산업안정자금 기준(차입금 5000억원 이상, 근로자 수 300인 이상)을 충족하지 못해 이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은 애초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 이 기준을 낮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긴 했다"며 "현재로서는 이 대안이 이스타항공에는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항공사들이 활용하고 있는 고용안정기금 또한 이스타항공은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반납 등을 비롯해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직원 62명이 정리해고 대상에 올라있다. 고용안정기금은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는 조건으로만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