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좀 팔려고 하는데요."
"얼마 원하시는데요? 그 가격엔 안 팔려요."

별 것 아닌 것 같은 대화가 소송전까지 이르게 했다. 2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도곡1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가 주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주민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지속적으로 ‘매도 호가 낮추는 곳’ 등이라고 낙인을 찍어 영업 방해와 명예 훼손을 했다는 것이 소송 이유다.

도곡동 인근 공인중개업계 관계자는 "해당 주민의 아파트 가격을 두고 협상을 하려다가 갈등이 생겼다. 매도자는 공인중개사 대표가 매수인에게 유리한 논지를 편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최근 몇년간 매도자 우위 시장이 빚어지면서 생긴 해프닝으로 보고 있다. 당국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을 수 차례 내놨지만 서초·강남·송파로 대표되는 강남 3구의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올 상반기에 잠시 쉬어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매도자 우위 장세가 지속됐다.

서울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매도자가 호가를 높여놓은 상태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걸 매도자들이 이해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매도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해당 주택의 단점만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자산가치를 훼손시키는 악덕 업주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어 매도인이 분위기를 잘 모르는 경우가 특히 심하다.

도곡1동의 한 예비 매도자는 "가구 수가 적어도 학군도 좋고 입지가 좋은 편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호가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 불쾌했던 적이 있다. 가격은 시장이 정하는 것이고 공인중개업소는 호가를 그대로 올려주면 되는 일인데, 수수료를 챙기려고 남의 자산에 대한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이와 같은 일은 지난 2018년에도 동부이촌동(이촌1동)에서 벌어졌다. 당시 동부이촌동 공인중개업소 49곳은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호가 담합 압력을 넣은 주민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동네 공인중개사들이 빠른 매매를 위해 집값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놓고 있다고 일부 주민들이 동네 커뮤니티에서 주장한 것을 문제로 삼았다. 이들은 주민들이 시세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 호가가 등록이 되면 바로 허위매물로 신고를 했고, 얼마 이상으로는 절대로 부동산에 내놓지 말자는 담합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부이촌동의 공인중개업소 앞에는 "시세 왜곡이나 가격 담합은 동부이촌동 모든 소유자, 임차인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기만행위이며 수요와 공급으로 이뤄지는 시장가격 형성의 원리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적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동부이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 3구보다 집값이 덜 오르다보니 화살이 애꿎게 이리로 향했던 일"라고 주장했다.

올해 초 과천 일대의 부동산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과천 부동산 커뮤니티 중심으로 과천 공인중개업소들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집값의 주범이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과천 별양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네이버에 매물을 올리면 가짜 매물이라고 신고하고, 주민들끼리 초성으로 ‘나쁜 부동산’ 리스트를 공유해서 스트레스가 컸다. 카카오톡 때문에 시세 정보가 빠르지만 거짓도 많은데, 그걸 들이밀면서 잘못했다고 한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터넷 카페와 주민 단체 채팅방 등이 활성화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 장점이지만, 이들이 시장을 과열시키고 매물 잠김 현상을 유도하고 있는 면도 있다"며 "공인중개사를 협박하거나 위력을 행사하는 불법행위를 처벌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