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수백억원대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진다. 지난 1년새 환매가 중단된 펀드 금액만 3조원이다. 단일 금융상품으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의 피해금액이 1조6000억원이었다. 환매중지된 펀드가 단일 금융상품은 아니지만, 고객에게 부실 금융상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잇단 펀드 환매 중단사태의 이유를 금융당국에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 금융감독기관의 부실 감독, 금융사의 탐욕 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모두 맞는 지적이지만, 보다 근원적 문제가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책임감은 희석하고 밥그릇 싸움만 치열하게 만드는 현행 금융감독 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금융감독 체계를 현행 금융위-금감원으로 이원화했다. 금융위는 정책 입안과 감독집행 업무 모두를 담당하고,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감독업무를 위탁받는 방식이 됐다. 당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목적은 정책과 감독을 모두 맡는 금융위의 권한을 분산해 관치금융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논의 과정은 서로 권력을 더 가지려는 두 기관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금융위는 금감원의 목줄을 놓지 않으려 별렀고, 금감원은 금융위 지휘에서 벗어나려고 전방위로 움직였다. 당시 금융위의 금감원에 대한 ‘지시감독’ 권한이 ‘지도감독’으로 순화됐는데, 금감원은 이를 ‘조직의 승리’라며 환호했다. 두 조직은 이렇게 전쟁터에서 태어났다.

당시 국회는 금감원의 권한을 금융위원회 설치법 하위법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등 감독체계 개편을 어설프게 봉합했다. 두 기관은 징계 권한을 놓고 싸우다 중징계 이상은 금융위 의결을 거치고 경징계는 금융감독원장이 결정하도록 했다. 금감원이 정한 징계를 금융위가 뒤엎고 이에 금감원이 반발하는 일이 반복되는 문제가 이때 시작됐다.

조직은 둘로 나눴는데 기능과 권한은 애매모호하게 걸쳐놓으니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금감원은 이번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위의 규제 완화를 지목한다. 금융위는 2015년 5억원이던 한국형 헤지펀드 최소 가입금액을 1억원으로 낮췄다. 최근 환매가 중단된 펀드 투자자들의 투자금이 대부분 1억원인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융위는 또 사모펀드(PEF) 설립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후 국내 PEF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 PEF는 총 721개로 사모펀드 제도개편이 있었던 2015년보다 2.3배 늘었다.

하지만 규제를 푼다고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다. 감독 권한을 가진 금감원은 규제 완화에 맞춰 조직을 개편하고 감독을 강화하고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필 의무가 있다. 금감원이 하지 않으면 권한을 가진 금융위가 ‘지도감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모펀드 규제 완화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이 관리·감독 강화를 위해 어떤 협업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걸 보니 협업을 하지 않았거나 미흡했거나 둘 중 하나다.

두 기관이 ‘네 탓이오’를 외치며 싸우는 동안 금융당국의 책임은 슬며시 사리지고 규제 강화와 금융사 철퇴만 남는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사태, 2014년 카드사 고객 정보 유출, 최근 DLF까지 모두 이런 악습의 반복이다. 대형 금융사고 때 금융당국이 스스로에 책임을 물어 관련 직원을 징계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펀드 환매 사태로 또다시 우리 금융감독 체계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금융시장 질서를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금융감독 체계 선진화에 나서야 한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모두 각기 다른 금융감독 체계를 갖고 있으니 정답은 없다. 현행 금융감독 체계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대전제만 명심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를 공약했었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야말로 금융 소비자 보호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