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선진국처럼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설립해야"
'선택과 집중' 시급… 전문가 의견 반영⋅과기부 역할 강화돼야
美 정부, 데이터 정책 수립 앞두고 전문가 공청회만 87회

"올해 400억원 수준을 투입해 50여개의 빅데이터 센터를 구축한다." 지난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디지털 뉴딜 사업 설명회에서 나온 내용의 일부다.

현장에 있던 IT 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이버가 세종시에 설립할 예정인 제2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투자금이 약 5000억원에 달한다. 50여개 빅데이터 센터 구축 자금 400억원은 올 하반기 집행예산이어서 향후 더 늘긴 하겠지만 현실 수요와는 괴리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비대면) 신산업 창출과 4차산업혁명 선도를 외치며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의 핵심인 디지털뉴딜을 위한 예산이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디지털 뉴딜이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터는 디지털 뉴딜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강원 춘천에 있는 더존비즈온 강촌갬퍼스를 찾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의 가장 중요한 축이 디지털 뉴딜이라면서 디지털 뉴딜을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유한 게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디지털 뉴딜 주제 발표에서 "2022년까지 데이터 일자리 20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올해 3차 추가경정예산에 반영된 디지털 뉴딜 에산 2조 7000억원 가운데 데이터와 네트워크 인공지능을 뜻하는 D.N.A 생턔계 강화에 가장 많은 1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빅데이터 센터 구축은 예산 배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형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미국,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정부는 이미 수년전부터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차세대 빅데이터 센터'라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있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한화로 수천억원의 자금이 소요된다"며 "50개의 빅데이터 센터를 짓는거보다 다수의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최첨단의 대규모 빅데이터 센터를 하나라도 잘 운용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뉴딜과 관련한 예산 배정 과정에서 충분한 전문가 집단, 기업 수요 조사, 연구기관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게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은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인터넷진흥원(NI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산업 창출, 인공지능(AI) 고도화 등을 위해 범정부적으로 시행 중인 '미국 연방 데이터 전략 시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1년간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 등과 6차례의 공식 포럼, 무려 87회에 달하는 공청회를 진행했다.

우리의 경우 문 대통령이 디지털 뉴딜을 강조한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 이후 예산안을 내놓기까지 정부 주도 전문가 토론회나 공청회가 열리지 않았고, 미국이 범정부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거버넌스를 명확히 한 것과 달리 정부의 경우 디지털 뉴딜의 주무 부처도 모호한 상황이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지난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정부 3차 추경안 관련 과기정통부 주요사항' 브리핑을 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4차산업혁명 육성 정책이 최대한 기업, 시민사회, 개인의 수요와 맞아떨어지고 이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정확하게 투입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전문 위원회 4곳을 두고 필요한 예산을 짜는데 관여했다"며 "이는 정부 예산이 눈 먼 돈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뉴딜의 주무부처 역할을 해야할 과기정통부가 실질적으로 이를 주도할 수 있도록 과기부총리제를 부활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7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코로나 이후 환경변화 대응 과학기술 정책포럼'에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정부 조직을 과학기술부총리를 부활시킨 3부총리 체제로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과기부총리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조직을 개편하면서 폐지됐다.

장 교수는 "정부가 제조업을 바탕으로 예산과 조직을 키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하는 과학기술 부분의 역할을 키우는 '과학기술 기반 복지국가'로 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 조직이 경제부총리·사회부총리의 양부총리 체제에 과기정통부 장관을 과기부총리로 임명하는 3부총리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3차 추경에 편성된 디지털 뉴딜 예산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