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신사옥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이 올해 첫 삽을 뜨게 되면서 엘리베이터 기업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초고층 빌딩 승강기 사업을 수주하면 자사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데다 보수·유지 수익 등 안정적인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글로벌 엘리베이터 회사들이 총출동할 전망이다.

이번 수주전에 임하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각오는 특히 남다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1위 엘리베이터 회사지만 초고층 승강기 수주 경험이 적다. 범(汎)현대가인 현대차그룹 일감마저 놓친다면 다음 기회는 언제 올지조차 알 수 없어 이번에는 반드시 따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엘리베이터 업계에서는 건설경기가 어려워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더욱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한 대를 수주하면 일반 엘리베이터 3~5대의 매출을 낸다. 일반 아파트에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는 대당 3000만~4000만원이지만,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대당 가격이 최고 10억원대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지어질 현대자동차그룹 신사옥 ‘GBC’ 조감도.

현대차 GBC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지어질 지하 7층~지상 105층짜리 건물로, 완공될 경우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다. 현대차 GBC는 569미터로, 555미터인 롯데월드타워보다 14미터 더 높다. 현대차 GBC는 지난달 착공 허가를 받았고, 2026년 하반기까지 준공을 마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GBC가 이르면 올해 말 120대 이상의 엘리베이터 입찰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외 엘리베이터사들은 수주전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초고층 승강기 부문에서 약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에서 43%의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 가격대가 낮은 중저층 건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수익을 내왔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고층 건물이라고 해봐야 289미터 높이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정도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앞선 롯데월드타워 시공에서 1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당시 초고층인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엘리베이터 61대 중 오티스가 31대, 미쯔비시가 30대를 맡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롯데월드타워 대신 저층인 롯데몰에 엘리베이터 60여대를 공급하는 데 그쳤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번 수주를 위해 사내 고속 영업팀을 중심으로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GBC 빌딩에 맞게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제작하거나, 기존에 선보였던 ‘디 엘’로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벨트를 탑재한 분속 1260m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건물 높이 상 분속 600m~1080m인 디엘이 더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오티스가 롯데월드타워 최상부에 권상기를 설치하는 모습

다른 글로벌 엘리베이터 업계 강자들도 GBC 수주를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국내 초고층 엘리베이터 시장을 주름잡아온 미국계 오티스와 독일계 티센크루프, 일본계 미쓰비시 등 외국 업체 등은 그간의 경험을 내세워 수주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티스는 현재 국내 최고층인 건물인 롯데월드타워에 내놓았던 ‘스카이라이즈’ 엘리베이터(분속 600m)’를 내놓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 코리아도 서울에서 두번째로 높은 여의도 파크원과 G스퀘어에 설치한 트윈 엘리베이터(하나의 승강로에 두 대의 승강기)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한 엘리베이터 업체 관계자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극도의 안전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과거 설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국내외 마천루 시장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외국사들이 아무래도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GBC가 롯데월드타워처럼 여러 회사에 일감을 나눠준다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일부 수주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범현대 기업이 신사옥을 지을 경우 현대엘리베이터 제품을 쓴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올해 4월 강남구 대치동에 새롭게 문을 연 현대백화점 신사옥에도 현대엘리베이터 제품 8대가 설치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GBC가 아직까지 발주를 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롯데타워처럼 여러 업체에 맡길 가능성도 있다"며 "현대차, 현대엘리베이터 모두 범현대가인 만큼 이번에는 초고층 엘리베이터를 수주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이라고 말했다. 범 현대그룹 한 관계자도 "계열 분리된 지 20년이 됐지만 아직도 서로 일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범 현대그룹 기업이 건물을 지을 때는 거의 전부 현대엘리베이터에 일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