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도권 지역의 집값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추가 규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홍남기 부총리는 11일 "서울과 수도권의 비규제 지역에서 가격 상승세가 포착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정부로서는 민생과 직결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분양권 전매 규제를 골자로 한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1개월 만에 다시 22번째 대책을 시사한 셈이다.

◇"뭉쳐진 돈이 다시 서울로 간다" 정부 추가 규제 언급한 배경

정부가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추가 규제를 언급한 것은 한동안 약세를 보였던 서울 집값이 다시 보합세로 전환한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은 12·16 대책 효과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 영향으로 서울 집값은 한동안 내림세를 보였다. 하지만 풍선효과가 생기면서 경기 남부와 서부 지역 부동산 값은 크게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서울까지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최근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투자자들은 비조정지역에서 덜 오른 주택에 투자해 단기 차익을 내고, 이 차익들을 합해 서울 수도권 지역의 집 한 채를 사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한국 감정원 통계를 보면 서울 집값은 10주만에 반등했다. 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02% 올랐다. 서울 강남구는 0.02% 오르며 올 1월 둘째주 이후로 5개월 만에 반등했다. 송파구(0.05%)도 하락세를 멈추며 소폭 올랐고, 서초구(0.00%), 마포·용산구(0.00%)는 보합으로 전환했다. 구로구(0.05%)·동대문구(0.03%)·중랑구(0.02%) 등은 소폭 올랐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J공인중개사 대표는 "6월 말까지 주택을 팔아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을 보려던 급매물이 모두 소진됐다"면서 "이 동네 대장 아파트의 경우 전용 면적 84㎡ 기준으로 직전 급매물이 12억원대에 팔렸는데 지금은 가장 싼 것이 15억원대"라고 했다.

서울 도곡동의 A공인중개사 대표도 "급매물이 다 거둬지고 점차 가격이 오르고 있다"면서 "이미 재산세도 다 내게 된 매도인 입장에선 급할 것이 없는 만큼 호가를 낮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DB

◇ 인천·경기 일부 지역, 조정지역으로 지정될까

하지만 서울은 이미 최고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 곳이다.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가 비조정지역 중 집값이 많이 오른 일부를 조정지역으로 지정해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수원 영통구·권선구·장안구와 안양 만안구, 의왕시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신규 지정한 지는 넉달이 지났다. 비조정지역에서 조정지역으로 격상될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곳은 경기도 군포시, 안산시 단원구, 인천 연수구와 서구 등이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주택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곳은 군포시였다. 최근 석달새 9.44%나 올랐다. 경기도 안산시(3.97%), 특히 단원구(5.73%)의 집값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인천 연수구(6.52%), 서구(4.25%), 남동구(4.14%)의 집값도 많이 올랐다.

국토부는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할 때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해당 시·도 물가상승률의 1.3배가 넘는 곳을 가려내고 청약경쟁률이나 분양권 전매거래량, 주택보급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대상지역으로 정한다. 조정대상지역이 되면 주택을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70%에서 50%로 줄어들고, 다주택자는 양도세율이 높아지며 비과세 요건 등도 달라진다.

이 밖에도 주택담보대출 금지 기준을 15억원 초과 아파트에서 9억원 초과 아파트로 낮추는 대출 규제도 나올 수 있다. 이날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규제지역을 지정할 수도 있고 대출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나온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 당시에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고 9억원 이상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를 40%에서 20%로 낮춘 바 있다.

또 용산 정비창 부지 개발 발표 이후 일부 지역을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만큼 이를 다른 지역에도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 규제 나오면 집값 잡힐까… "일시적이라는 전망이 우세"

비조정지역이 조정지역으로 바뀌면 일시적으로는 집값이 잡힐 수 있다. 비조정지역에 주택을 여러 채 사들인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조정지역 지정 전에 주택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조정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최대 70%에서 50%로 줄어들기 때문에 비조정지역일 때보다 매수자를 찾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란 이들도 많다. 최근 비조정지역 주택을 매수한 이들이 부동산 매매 법인 투자자기 때문이다. 법인 투자자들은 주택을 매도할 때 양도소득세를 20% 내면 된다. 개인 명의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3주택일 경우 62%)보다 현저히 낮다.

또 최근 전월세입자의 주거 안정화 정책에 따라 전세자금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연 0.50%로 내려갔다는 점 때문에 주택 가격 하락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심지어 비조정지역에서 조정지역으로 전환되면 주택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도 많다. 투자자들이 몰리는 지역이란 인식이 펴지면서 오히려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부의 ‘찍어주기’ 효과다. 실제로 지난 2월 조정지역으로 편입된 수원 영통구·권선구·장안구와 안양 만안구, 의왕시 중 일부는 여전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영통구는 조정지역으로 편입된 이후 5.95%, 권선구는 5.82% 올랐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정지역을 새로 지정해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시장에서 언급되는 지역들을 보면 서울을 포함한 조정지역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나온 곳인데, 새로운 규제가 나온다고 해도 또 다른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교통 등 지역 인프라에 따라 규제 효과가 다를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고준석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광역 교통망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의 집값은 내려가지 않겠지만, 인프라가 모자란 곳은 규제가 들어가면 단기적으로 시장이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