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에 입주한 김모씨(35)는 서울시에 아파트를 소유한 유주택자다.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직장과 가까운 곳의 역세권 청년주택에 입주했다. 그는 "덕분에 출·퇴근이 편해지긴 했지만, 내가 역세권 청년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맞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뭔가 잘못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마련된 역세권 청년주택 모습

역세권 청년주택이 졸속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역세권 청년주택’은 오는 2022년까지 통근·통학하기 편리한 역세권에 임대주택 8만가구를 만들어 19~39세 청년에게만 임대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중점 주거복지사업이다.

대학생·청년층·신혼부부 등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삼은 만큼 서울시는 무주택자에게만 임대하도록 입주기준을 정했다. 그러나 장기간 공실로 방치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입주자격을 완화해 유주택자도 입주가 가능하도록 했다. 김씨는 이같은 예외조항에 따라 역세권 청년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결국 청년을 위해 만든 역세권 청년주택을 청년들이 외면하면서 생긴 일인 것이다.

청년주택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 생각보다 싸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민간업자들에게 역세권에 대규모 주거 시설을 지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20%의 공공임대 시설을 제외한 나머지를 민간업자가 '공공지원 민간임대'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민간임대는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95% 이내로 제한했지만, 일부 민간업자들은 임대료 상한을 우회해 각종 ‘옵션’ 비용으로 수익을 내려고 한다.

숭인동 청년주택의 경우 월세는 32만~38만원선이다. 하지만 여기에 각종 옵션 비용이 최대 30만원에 달했다. 이에 입주 대상 200여 가구 중 180여 가구가 입주를 포기하면서 논란이 일자 임대 업체는 모든 옵션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청년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하지 못해 미달이 발생하기도 했다. 충정로 청년주택은 숭인동과 정반대로 생활 필수 가전인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이 전혀 설치돼있지 않아 미달했다. 서교동 청년주택의 경우에는 전용 37㎡ 셰어(share)형이 미달했는데, 함께 거주할 사람을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정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것이 원인이었다. 장한평 청년주택 등은 보증금 부담에 미달이 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로 청년주택에 입주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저소득 청년층보다 유주택자나 안정된 소득을 지닌 직장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업 초기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개선해나가겠다"라면서도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은 입주자들에 대해 실태조사도 하지 못한 채 대책 마련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장을 관리하기 어려운 데다, 사업자의 수익보장 등 여러 가지 변수를 다양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주택자 입주 등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로, 새로 입주할 역세권 청년주택에 무주택자를 위한 원칙은 계속 견지해나갈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유주택자가 입주하는 공실들을 달리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서울시는 제도 개선을 통해 역세권 청년주택의 인기가 많아져 공실이 줄어들게 되면, 유주택 입주자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무주택자에게 계약 우선순위를 주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