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기술 없어 로열티만 1조 내야
선가도 하락 추세… "대박 아닐 수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이름난 조선(造船) 강국으로 통한다. 그 중심에는 전 세계 점유율 90%를 차지하며 효자 노릇을 하는 LNG(액화천연가스) 선박이 있다. 국내 조선 3사는 최근 카타르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LNG선 수주를 따내며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잘나가는 국내 LNG선 사업에도 ‘뼈 아픈 약점’은 있다. 바로 LNG운반선의 핵심인 화물창 설계 기술이 없어 해외기업에 로열티로 선가의 5%가량을 지불한다는 점이다. 조선업계에서는 기술 자립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LNG 선가는 2016년 이후 하락 추세에 있고 이번 100척 수주 또한 업황이 좋지 않을 때 이뤄내 선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수주는 규모는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조금씩 나오는 배경이다.

◇ 韓, LNG선 한 척 만들 때마다 佛에 100억원… "엔진값만큼 기술사용료 낸다"

LNG 화물창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영하 160도로 유지·보관하는 저장창고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이라면 화물창은 190도 이상의 온도 차이를 감내해야 한다. 내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가스가 급격히 팽창, 폭발할 수 있어 정교한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

LNG선 화물창 내부 모습. 공사가 끝나면 내부 발판을 철거하고, 시운전을 하게 된다.

현재 국내 모든 LNG선 화물창은 프랑스 GTT의 설계로 건조된다. 전 세계에서 화물창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GTT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는 LNG 선박 1척을 만들 때, 로열티로 뱃값의 5%가량인 100억원을 낸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조선사가 GTT에 지급한 로열티만 4조원을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조선사의 카타르발(發) LNG운반선 수주 소식에 GTT도 덩달아 웃음꽃이 피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 1일 오후 카타르페트롤리엄(QP)과 LNG 운반선 슬롯(배를 만드는 공간) 예약 계약을 맺었다. 조선 3사가 100척을 건조하면 GTT는 1조원 넘는 돈을 챙기게 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산업은 외형 중심의 성장을 이뤘으나, 핵심기술 개발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만일 중국이 GTT를 인수해버리고 화물창 기술을 못쓰게 한다면 한국조선소는 LNG선을 건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2012년 GTT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국내 조선사들이 인수했다면 상황이 완전 달랐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LNG선 화물창 기술 사용료는 선박 엔진 가격(뱃값의 5%)이나 재료비·인건비 등을 제외한 LNG선 건조이익(100억~140억원)과 비슷하다"며 "결국 외국기업(GTT)에 좋은 일 시켜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 국산 화물창 개발 노력했지만… 아직은 걸음마도 못 떼

국내 조선소들도 할 말은 있다. 조선업계는 그간 한국형 LNG 화물창을 숙원산업으로 꼽아왔다. 앞서 2014년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가 참여해 한국형 화물창 설계기술 'KC-1'을 개발했지만, 상용화를 하기 전 기술력에 발목이 잡혔다.

삼성중공업은 2018년 초 전 세계 최초로 KC-1을 적용해 건조한 LNG운반선 두 척을 SK해운에 인도했다가 애를 먹었다. 인도한 선박 2척은 화물창 외벽 결빙 문제가 발생해 모두 운항을 중지한 상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연구개발을 강화해 독자적 화물창 설계기술을 선보인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하이멕스’, 대우조선은 ‘솔리더스’라는 독자적 화물창 설계기술을 내놨다. 양사가 시장개척을 위해 애를 썼지만, 아직 공식적인 판매는 한 건도 없었다. 안정적인 GTT 기술을 선호하는 선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조선3사는 한국형 화물창에 대한 후속 개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부는 KC-1 품질개선과 성능을 향상시킨 후속 모델을 개발하는 국책과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LNG 기화율(증발률) 및 생산 단가 하락에 초점을 맞춘다는 목표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화물창 독자기술을 개발하면 로열티를 내지 않아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다른 글로벌 조선사에 로열티를 받고 팔 수 있기 때문에 독자기술이 중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 "지나친 낙관론 안돼"…카타르 잭팟에도 조심스러운 조선업계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카타르 LNG운반선 슬롯예약계약 MOA 서명식'에서 카타르 석유공사와 한국 조선 3의 협약 서명식을 하고 있다. 이날 서명식에는 사드 쉐리다 알 카비 카타르 에너지 장관, 칼리드 빈 할리파 알 따니 카타르가스 CEO,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대표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화물창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지나친 낙관론을 펼치면 안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카타르가 발주한 LNG선 100척이 한꺼번에 한 회사에 배정되는 것도 아니고, 5년에 걸쳐 3개 회사가 나눠 가져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단일 프로젝트로 LNG선 100척을 수주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면서도 "조선 3사가 5년 동안 이 물량을 나눠서 갖는다고 보면 목표량의 20% 수준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주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LNG선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LNG선 평균 가격은 2015년 2억400만 달러였으나, 과도한 경쟁으로 최근에는 1억8600만달러선에 머물고 있다. 조선 3사는 아직 카타르 QP와 선가를 논의한 단계는 아니지만, 업황을 감안했을 땐 고가로 계약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카타르 QP는 현재 LNG선을 만들 수 있는 공간만 계약했을 뿐, 각사별 LNG 선박 척수와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향후 LNG를 운반할 해운사를 고르고, 이에 맞는 선박의 사양을 결정한 뒤 조선사와 선가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 3사가 과당경쟁을 펼치면 적정 선가를 확보하지 못하고 수주에만 집중하면, 기존보다 저가에 수주할 가능성도 있다"며 "선가는 선가대로 깎이고 용선료는 용선료대로 낮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