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창간 10주년 기획]

2020년은 21세기의 원년인 2001년 출생한 사람이 성년이 되는 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경제와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해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치러졌다. 혼란과 불안의 정서가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라 곳곳에서는 옛 건물이 허물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도시가 계획되고, 새 철길과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창간 10주년을 맞은 조선비즈가 2020년의 대한민국 모습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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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와 서울지하철 1호선 광명셔틀, 인천공항 도심공항터미널이 만나는 경기도 광명시 KTX광명역. 지난 2004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광명역세권개발사업, 광명뉴타운과 함께 2020년 ‘광명 아파트값 10억원 시대’를 만든 3대 엔진 중 첫손에 꼽힌다. 한국철도공사의 최신 집계인 2018년 기준 자료를 보면, 광명역에서 타고 내리는 여객수는 약 643만5000명이다. 전국에서 이용객 수가 6번째로 많은 KTX역이다.

물론 처음부터 광명역의 위상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1989년 경부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착수하던 때만 해도 계획에 없던 역이다. 더욱이 경부고속철도 사업 자체도 추진 속도가 더뎠다. 1992년 착공하고도 잦은 설계 변경과 예상보다 늘어난 사업비 때문에 개통 예정 시기가 자꾸 미뤄졌다.

교통부(당시 건설교통부)는 경부고속철도를 착공한 바로 이듬해에 준공 목표를 당초보다 3년 가까이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경기권에 경부고속철도의 시발역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안양·시흥·안산 등 범안양권의 철도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남서울역’을 신설할 방침이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 일대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도 이 때다. 경부고속철도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광명역 신설 사업을 끼워넣은 셈이다. 2000년 광명역이란 명칭을 확정하고, 2004년 개통했지만 광명역의 역할은 철도역으로서도 지역 랜드마크로서도 미미했다. 서울과 연결되는 지하철이나 버스 연결편이 마땅찮은데다 역 밖으로 나서면 그야말로 허허벌판뿐이었다. 사업비 규모에 빗댄 ‘5000억원짜리 간이역’, 이용하는 사람은 없고 공기뿐이라는 뜻으로 ‘광명국제공항’ 같다는 비판이 많았다.

2020년 5월 22일 하늘에서 촬영한 KTX광명역사.
KTX광명역 플랫폼 전경

광명역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교통망이 차츰차츰 추가되면서다. 2006년 서울 영등포역까지 연결되는 서울지하철 1호선 광명셔틀이 개통됐고, 각종 광역버스 노선들도 추가됐다. 광명역에서는 서울시·인천시·경기도 버스들이 동시에 만난다. 광명역을 제외하고 세 수도권 지자체의 버스가 만나는 역은 경기도에서 부천 송내역과 신중동역, 과천 선바위역 뿐이다.

지난 2018년에는 광명역에 한국의 4번째 도심공항터미널이 개장했다. 비서울권에 들어선 첫 도심공항터미널이다. 여기에 더해 2024년 개통 목표로 추진되는 신안산선과 경기 시흥시 월곶역과 강원 강릉시 강릉역을 연결하는 경강선의 월곶-판교 구간(2025년 예정) 등이 광명역을 지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이던 2020년 4월 1일 KTX광명역에서 해외 입국자 전용 버스에 승하차하는 승객들(위)과 KTX의 해외 입국자 전용 객실에 붙은 안내문.

다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020년의 광명역은 활기가 줄어든 상태다.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이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도심공항터미널은 운영을 임시 중단했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는 해외 입국자들은 전용 버스와 전용 객실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 이케아·코스트코 유통 공룡이 띄운 광명역세권

광명역세권도 처음부터 지금 같은 ‘쇼핑의 메카’는 아니었다. 광명역세권개발사업이 첫 삽을 뜬 때는 KTX광명역이 문을 연 2004년. 신설된 KTX역을 발판 삼아 이 일대를 미니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당시 건설교통부와 경기도, 광명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광명역 주변 부지 195만㎡에 주택을 9000여가구 짓고 상가와 업무용 건물 등을 짓기 위해 토지 이용계획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광명 거주민조차 광명역 주변을 변두리로 취급했다. 역세권 사업지의 구획정리를 끝낼 즈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개발 사업도 함께 표류했다. 전국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할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자 광명역세권의 상업시설 유치와 주택용지 매각에도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014년 가구점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을 짓는 공사 현장(위)과 완공된 건물들의 2020년 전경

광명역세권개발 사업에 다시 탄력이 붙은 데는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유통 트로이카’의 공이 컸다. 서울보다 저렴한 땅값과 광역교통망을 등에 업은 서울 접근성 등 광명 역세권의 입지를 높이산 코스트코와 이케아 등이 2011년 광명역세권 부지에 지점을 내기로 결정했다. 광명역은 KTX를 이용하면 서울 중심부인 용산역과 서울역에서 15분 안에 닿는데다, 주변에 주민들의 쇼핑 수요를 흡수할 만한 대형 유통업체가 없어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

코스트코 광명점 입구

광명역 자체가 수도권 남부 지역의 교통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만든 역이다보니 고속철도와 지하철, 광역버스 등 대중교통망도 안양·안산·시흥·부천시와 인천 남동구·연수구 등 경기도 주요 주거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끔 조성되기도 했다.

광명시의 도로 교통망이 보완된 점도 광명역 인근이 쇼핑 거점으로 자리잡는데 플러스 요인이 됐다. 2004년 KTX광명역 개통에 맞춰 서해안고속도로에 광명역IC가 신설됐고, 2016년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소하IC와 수원문산고속도로의 수원~광명구간이 개통되면서 평택·수원·군포시 접근성도 개선됐다.

광명역세권개발사업의 토지 이용계획도

미국의 창고형 할인점인 코스트코 광명점은 한국 9호점이다. 경기권에는 일산점에 이은 두 번째 매장이다. 2012년 12월 광명점을 개장하면서 코스트코코리아 본사도 이 곳으로 이전했다. 스웨덴 대형 가구점 이케아는 한국 1호점 부지로 광명을 낙점하고, 2012년 12월 문을 열었다. 이케아와 나란히 지은 롯데프리미엄아울렛도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빈 땅에 기차역만 덩그러니 서 있던 광명역세권은 서울에서도 KTX를 타고 쇼핑하러 오는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한 원동력이다.

광명역세권 개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명역을 중심으로 지식산업센터와 주상복합 건축 공사가 한창이고, 광명국제디자인클러스터(GIDC)와 중앙대학교 광명병원 등이 들어서는 의료클러스터도 지어지는 중이다. 방송·영상 제작 기업들이 입주하고 한류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와 공연장, 4성급 관광호텔 등이 조성되는 미디어클러스터인 ‘광명미디어아트밸리’ 개발 사업도 지난 2017년 착공했다.

2020년 5월 한창 공사 중인 광명국제디자인클러스터 건설 현장.

◇ KTX가 군불 지핀 재개발 사업, 광명뉴타운

광명시는 2020년 현재 서울과 세종을 제외하고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동시 지정된 몇 안되는 지역이다. 2중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광명 외에는 과천·성남·하남시 정도다. 광명의 위상을 이처럼 띄운 마지막 동력원은 KTX광명역과 옛 광명역(현 광명사거리역)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는 광명뉴타운이다. 서울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역과 철산역 일대 230만㎡ 다세대주택·빌라촌이 23개 구역으로 분할해, 주택 4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시작됐다.

물론 모든 구역이 수월하게 재개발 궤도에 들어서진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이 지리멸렬해진 탓이다. 2013년 5개 구역이 주민들의 요구로 정비구역에서 해제됐고, 2015년에는 추가로 6개 구역이 뒤따랐다. 23C 구역은 사업 진행 속도가 나지 않아 경기도에서 2015년 직권으로 정비구역에서 해제했다.

그래픽=박길우

반면 나머지 구역들은 차근차근 재개발을 추진했다.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밑바탕은 광명뉴타운의 입지와 광명역의 교통 호재였다. 경부고속철도를 비롯해 신안산선, 경강선 등 광역교통망 개발 계획들이 광명역을 지나는 노선으로 줄줄이 추진되는데 기대를 걸었다.

광명시에 따르면 2020년 4월 말 기준으로 14R~16R 구역은 이미 착공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인 9R·11R·12R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들도 이주를 준비하거나 이주 중이다. 앞으로 3~5년 뒤면 이 일대는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가 2만2500여가구 들어선 주거지역으로 변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