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TV(CCTV) 철탑 위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온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가 철탑에 오른 지 355일만에 농성을 접고 땅을 밟았다.

김씨는 29일 오후 7시 4분쯤 소방 사다리차를 타고 철탑에서 내려왔다. 삼성 측과 명예복직, 보상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서다. 김씨는 곧바로 휠체어에 앉아 "해고 이후 처절한 고통 속에서 신음했다. 목숨을 걸고 철탑에 올라서라도 해고노동자의 삶과 고통이 사회에 닿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삼성항공에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돼 복직을 위한 고공농성을 벌여온 김용희 씨가 29일 농성을 접고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내려온 후 지인들과 포옹하고 있다.

그는 "철탑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며 "하지만 ‘연대해 온 동지들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자, 아픔을 주지 말자’(하면서) 버텼다"고 했다. 이어 "이번 투쟁을 통해 삼성이 새로운 노사문화 패러다임을 정착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관계가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하고 반칙없는, 노동자가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해고되거나 눈물 흘릴 일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금 노동자 정책은 다 어디로 갔나"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김씨가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행정 소송을 맡은 변호사였다.

이날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이하 공대위)는 오후 6시부터 김씨가 농성을 벌였던 철탑 밑에서 삼성과의 합의 내용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공대위 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달 29일부터 한 달간 계속된 삼성과의 협상 끝에 전날(28일) 오후 6시 협상을 타결했다"며 "삼성 측이 김용희씨 명예회복을 위한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고 명예복직,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삼성 측의 사과문 내용도 공개했다. 사과문은 "김용희님의 장기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 부족해 가족분들이 겪은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다만 이외에 구체적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심 대표는 "오늘 김용희 당원의 승리는 무노조 황제 경영으로 노동 기본권을 차단해 온 삼성의 담벼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1982년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 입사해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김씨는 지난해 6월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이어왔다. 고공농성 중 세 차례 단식 농성을 병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