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규모 5조원 이상) 리스트’에 해운사 2곳이 이름을 올렸다. 4년 만에 다시 대기업집단에 합류한 HMM(옛 현대상선·53위)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 주목받은 것은 2년 만에 자산규모가 4배 늘어난 장금상선(54위)이었다.

설립 30년이 넘은 장금상선은 '빅2'였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2010년대 이후 경영위기에 빠졌을 때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던 알짜 해운사지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상의 창업주 정태순(사진) 장금상선 회장이 공격 경영에 나서면서 빠른 속도로 사세가 커지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선주협회장으로 취임하며 대외활동도 활발히 하기 시작했다.

장금상선은 흥아해운 컨테이너선 사업부를 인수하고, 자산 매각과 신규 선박 투자를 진행해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장금상선의 자산규모는 2018년 1조6259억원에서 올해 6조4000억원 대로 크게 늘었다.

◇ 정태순 회장 공격 경영… 2018년 1조원대였던 자산, 올해 6조4000억원으로 크게 늘어

장금상선은 1989년 설립한 중국 합작 컨테이너사인 ‘장금유한공사’가 모태다. 한·중 수교 전 동남아해운과 중국 시노트란스가 협력해 한중 컨테이너 직항로 개설을 승인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장금상선은 그러나 설립 10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IMF 위기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지자 당시 월급쟁이 사장이었던 정 회장은 한중 양측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오너가 됐다.

정 회장이 인수한 뒤 장금유한공사는 장금상선으로 이름을 바꿨고, 신규항로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 기반 비즈니스를 펼쳐왔던 장금상선은 현재는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동 등 16개국 60여개 항구를 기항하고, 국양해운, 부산항터미널 등 17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장금상선은 흥아해운 컨테이너 사업부를 인수해 선복량 기준 국내 3위, 세계 19위 컨테이너선사로 도약하게 된다.

흥아해운(왼쪽)과 장금상선(SINOKOR) 컨테이너.

1948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 해양인이다. 그는 해양대를 졸업한 뒤 동남아해운에 입사해 해상직 경험을 쌓았고, 장금유한공사 설립 때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정 회장이 대외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선주협회장을 맡기 전에도 황해정기선사협의회 회장,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 총재,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 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왔다. 하지만 실리를 추구할 뿐 외부에 본인을 알리지는 않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스타일 또한 은둔형에 가깝다.

정 회장을 잘 아는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은 해운업에 몸담은 40여년 간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면서 "2013년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장이었던 정 회장이 정부·국회를 찾아가며 한국해양대학과 목포해양대학의 승선학과 신입생 증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일화도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부터 선주협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역내 항로만 운영하는 선사 간의 협력관계 구축을 강조해왔다.

◇ 장금상선-흥아해운 컨테이너선 부문 합병, 득 될까

해운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해운업에 대한 열정을 인정하면서도 흥아해운(003280)컨테이너사업부문과의 통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통합법인의 조기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대 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중소 선사 11곳이 통합작업에서 빠지면서 힘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정부가 해운업 활성화 및 구조조정을 위해 2018년 출범시킨 조직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중소법인 통폐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을 제외하곤 모두 빠졌다.

해운업계 내에서는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데 정말 어려운 기업을 돕거나, 경쟁력 있는 기업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가 왜 장금상선과 흥아해운만 도와주느냐" 등의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선·해운업계는 장금상선의 향후 발주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장금상선은 지난해 중국 조선사 3곳에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하려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반발에 중단한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금상선이 흥아해운을 떠안다시피 해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중국에서 선박을 몽땅 지어와 자기네만 혜택을 누리려고 해서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도 "중국 정부의 금융 지원이 워낙 탄탄해 이해는 가지만 정부지원을 받고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