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진 공공주택에서 잔여물량이 잇달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입지나 가격 조건이 수요자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분양 경기가 활발한 상황에서도 공공주택조차 분양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골목 전경.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빈집은 148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10%에 달한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지방 곳곳에 공급된 공공주택의 잔여세대 물량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잔여세대는 당초 분양물량보다 청약 신청자가 적은 경우 또는 당첨이 취소된 부적격 당첨자나 자금난으로 최종 계약을 포기한 사람이 있을 때 나오는 물량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분양한 부산 기장 신혼희망타운은 728가구 중 장기임대주택(행복주택) 물량을 제외한 486가구 중 385가구가 잔여세대로 나와 추가 모집을 진행 중이다. 경기도 화성시 산척동에 공급되는 A104블록 신혼희망타운(공공분양)도 이달 추가입주자 모집을 진행 중이다. 1171가구 중 행복주택 물량 390가구를 제외한 781가구가 신혼부부 대상 공공분양 잔여물량으로 나왔다. 작년 10월 입주자 모집에 나섰던 춘천 우두B-2블록 공공분양주택의 경우 지난 11일 기준 979가구 중 287가구만 계약이 이뤄져, 692가구가 잔여세대로 남아있다.

공공주택에서 잔여세대 물량이 나온 것은 입지 탓이라는 게 지역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부산 기장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위치가 애매한데다 가격 면에서도 매력이 없어보인다"면서 "기장 내 32평형대 기존 아파트가 2억원대, 47평형대가 3억원 중반인데 신혼희망타운의 25평형대 분양가가 2억원 초반이니 가격 면에서도 큰 메리트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화성시의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 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교통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출·퇴근이 쉽지 않아 신혼부부들에게 부담이 있는 위치"라고 했다.

임대주택에서도 잔여 물량이 제법 나오고 있다.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공공실버주택 90가구에 대한 입주신청을 지난 1월 진행했는데, 5월 현재 잔여세대 62가구에 대한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울산송정지구에 공급하는 국민임대주택도 작년 5월 최초 공급한 이후 이달 잔여세대에 대한 입주자 모집에 나섰다. 전용면적 26㎡ 219가구, 37㎡ 119가구, 46㎡ 131세대 가구 등이 잔여세대 물량이다.

앞서 지난해 서울 수서역세권에서 분양한 신혼희망타운은 398명 모집에 총 2만4115명이 몰려 평균 6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서울 구의동에 공급한 역세권 청년주택(공공임대)은 18실 모집에 2519명이 몰리면서 경쟁률이 140대 1까지 치솟았다. 같은 공공임대주택이라도 입지 조건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지구마다 공공분양 잔여세대가 나오는 이유가 다르다"면서 "최초 입주자 모집에서 신청자가 미달된 경우가 있고, 신청은 마감됐으나 신청자에 대한 자산 검증 이후 부적격자가 나온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공공임대·분양을 통해 나오는 주택들이 소형 위주인 점, 교육, 문화, 생활 인프라 면에서 소외된 점 등을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확대 기조는 긍정적이지만, 결국 양질의 주택이 공급되는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을 공급하지 않으면 오히려 빈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수요자들은 공공분양 주택을 볼 때도 입지와 미래가치를 따진다"면서 "주거 여건이 실수요자들의 눈높이보다 낮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공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에 팽배해지면 결국 정부 사업 자체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 향상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