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닛케이 "정부의 韓 수출규제가 日 기업에 악영향" 보도
韓 대기업들, 순도 낮아도 공급 안정적인 자국업체로 공급망 전환
"한번 대체된 소재, 수출규제 풀려도 일본산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반도체나 액정패널에 들어가는 고순도 불화수소 세계시장 70%를 점유하는 일본 스텔라케미파가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2019회계연도(2019년4월1일~2020년3월31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18% 감소한 19억엔(256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순도 99.9999999999% 이상의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생기는 산화막을 제거하는 세정 작업에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 회사에서 불화수소를 수입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작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 하며 위기를 맞았다. 회사 측은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엄격화 조치로 주력상품인 반도체 액정부문의 수출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고순도 불화수소 출하량은 30% 줄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한국 기업의 첨단소재 국산화를 앞당겨 일본 기업을 궁지로 몰고 있다. 이런 현상을 2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가 보도하며 "한일 정부의 적대감이 일본 기업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세계 최대 액정업체인 LG디스플레이가 작년 11월부터 액정패널 제조 공정에 사용하는 불화수소 공급처를 일본 스텔라케미파에서 한국 기업인 솔브레인으로 바꾼 사례를 들었다.

솔브레인이 자체 생산해 가공한 불화수소는 스텔라케미파 제품보다 순도가 낮지만, 국가 간 갈등으로 생산이 아예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회사 측은 판단했다.

스텔라케미파의 경쟁사인 일본 모리타 화학공업은 1월 초에 한국에 대한 수출을 재개했지만 판매량은 수출 규제 전 보다 30% 감소했다. 이 회사의 고위 임원은 "한번 (수출 물량을) 빼앗긴 만큼 되돌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액정표시장치(LCD)와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제를 선호한 건 고품질에 안정적인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패널이나 반도체를 만들려면 100개가 넘는 섬세한 공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일부 소재를 바꾸면 불량품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가격이 약간 비싸더라도 제품 질을 높이기 위해 일본제를 써왔다.

그러나 이런 관행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흔들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의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공정의 일부에 국내 조달이 가능한 저순도 불화수소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안기현 상무는 "설령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작년 7월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한번 대체된 재료는 일본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 기업에 첨단소재 국산화를 독려한 것도 공급처 전환을 가속시키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장인 김상조 정책실장은 지난 1월 "우리나라 소재산업이 발전해 언젠가 땡큐 아베!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괜한 비판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 탈(脫)일본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일본계 전자부품 메이커의 한 영업 담당자는 "한국 기업 관계자가 '조달처 로서 일본 기업의 우선순위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며 "한국 정부의 과민반응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일본 정부가 좀 더 어른스럽게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인가"라고 불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