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채무 재조정 요구 들어주면 경제부담, 거절하면 反中 확산 우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뿌린 자금을 회수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자금난에 빠진 참여국의 채무 재조정 요청을 받아주기도, 거절하기도 난감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 국가인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거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채무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반중 감정이 커진것도 한 몫 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이 병의 전염성과 위험성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국제사회의 반감이 커졌다.

NYT는 이와 관련해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스리랑카와 몇몇 아프리카 국가가 중국에 올해 만기인 수십억달러 규모의 대출 변제기한 연기나 탕감 등 채무 재조정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독일 싱크탱크인 키엘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돈은 5200억달러(약 635조8560억원)가 넘는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 규모를 능가한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막대한 자금을 대출한 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다.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 중 처음 언급했다. ‘일대(一帶)’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중국에서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일대일로 선상에 있는 60여개 연선국가의 인구는 약 44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63%, 경제규모는 21조달러(약 2경4000조원)로 전 세계의 29%를 차지한다.

일대일로의 추진 배경에 대해 유라시아 육로와 바닷길을 장악해 중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규모 인프라 관련 투자를 통해 국내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중국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철도·도로·해상수송로를 구축한다는 계획아래 각국에 총 3500억달러를 대출해 줬다. 앞서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해 전 세계에 1조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국을 향해 빚을 탕감하거나 변제기한을 늦춰달라고 요구하는 채무국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부담을 떠앉을 수밖에 없다. 거부할 경우 반중감정 확산으로 목표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앞서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몰디브 등 일대일로 참여국 대부분이 빚더미에 오르자 각국 선거에서는 친중 정권이 잇따라 패배하기도 했다.

일대일로에 참여하면서 400억달러의 빚더미에 오르며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은 결국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파키스탄과 중국은 2015년 중국 신장에서 파키스탄 과다르항까지 3000㎞ 구간에 도로와 철도, 송유관 등을 구축하는 420억달러 규모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NYT는 "중국이 채무국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이들이 연합전선을 펼치고 대출 조건 등을 공개해 중국 외 다른 국가의 대출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서 결국 중국도 방식을 바꾸거나 물러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

중국은 대규모 빚 탕감 방침에는 선을 그으며 채무국과 협상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4월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중국과 17억달러 규모의 채무 상환기한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될수록 일대일로 관련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채무감축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데 중국의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