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마크제이콥스 등 '동물의 숲'에서 신상품 선보여
코로나에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유통업계도 주목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캐릭터 의상을 배포한 발렌티노.

지난 1일 이탈리아 명품 발렌티노가 신상품 패션쇼를 선보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이때 난데없이 웬 패션쇼냐고?

쇼가 열린 곳은 다름 아닌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물의 숲)’ 속이다. ‘동물의 숲’은 무인도에서 동물 주민들과 함께 섬을 꾸리는 내용의 게임으로, 3월 20일 발매된 후 6주간 세계적으로 1300만 장이 팔릴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게임에서는 캐릭터에게 원하는 의상을 만들어 입히고 외모를 꾸밀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 2020년 봄·여름 패션쇼를 재현한 것이다.

◇ ‘패션의 장’이 된 가상세계

감염병의 유행으로 손발이 묶인 현실 세계와 달리 자유롭게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동물의 숲’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집콕족(집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데일리 룩’을 찍어 공유하듯, 게임 속 캐릭터의 옷차림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샤넬, 구찌, 아크네 등의 옷을 입고 있다.

현실에선 멋 부리고 나갈 곳이 없어 온종일 추리닝만 입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명품 옷을 여러 벌 바꿔 입으며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다. 수백만원짜리 명품도 디자인 툴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 입으면 그만. 유저들은 샤넬, 루이비통, 슈프림, 오프화이트 등 유명 브랜드의 옷을 제작해 입으며 ‘패션 놀이’에 열중했다.

일상 패션을 찍어 공유하듯, 게임 속 캐릭터의 옷차림을 모아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생겨났다. 애니멀 크로싱 패션 아카이브(@animalcrossingfashionarchive), 눅스트리트 마켓(@nookstreetmarket), 애니멀크로스핏(@animalcrossfits)이 대표적이다. 이들 계정은 만들어진 지 2개월이 채 안 됐지만, 팔로워 수가 7만 명이 넘는다.

게임 속 패션에 관한 관심이 커지자 명품 브랜드들도 가상세계에 뛰어들었다. 발렌티노는 애니멀 크로싱 아카이브와 함께 20개 룩을 선보였고, 마크제이콥스는 6개의 신상품 의류를 무료로 배포했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안나수이, 이탈리아 브랜드 GCDS 등도 동참했다. 유저들은 현실에선 입기 어려운 값비싼 명품을 게임 속에서 입어볼 수 있다며 호응했다. 패션의 장을 넘어 마케팅이 장이 된 것이다.

발렌티노의 2020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과 ‘동물의 숲’ 캐릭터(위), 아래는 발렌티노가 유저들에게 무료로 배포한 의상 코드.

◇ 올해 e스포츠 시장 34.5% 증가… 마케팅 툴로 각광

그동안 패션계는 꾸준히 디지털 게임과 협력해 왔다. 루이비통은 2016년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인 '라이트닝'을 그해 봄·여름 광고 모델로 활용한 데 이어, 지난해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파트너십을 맺고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포트나이트(Fortnite)'에 나이키 에어조던 의상 아이템을 제공했고, 올 초엔 한국 e스포츠 게임단 T1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 국내 업체인 코오롱인터스트리FnC부문의 스포츠 의류 브랜드 헤드도 샌드박스 게이밍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들은 모두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와 소통하기 위해 디지털 게임과 협력했다고 밝혔다. e스포츠는 주 소비층인 MZ세대의 엔터테인먼트로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게임을 넘어 스포츠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마케팅 도구로서 가치를 높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언택트(untact·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하면서 게임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열린 ‘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봄 결승 경기의 모바일 시청자 수는 전년보다 39% 증가한 107만 명에 달했다.

루이비통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스킨.

부정적인 인식도 사라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게임을 질병으로 공식 지정했던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사태 이후 게임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여가 문화로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청와대는 올해 어린이날 행사를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랜선 초청 행사로 대체했다.

유통업계도 e스포츠에 주목한다. 롯데제과는 아이스크림 월드콘의 새 광고 모델로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를 발탁했고,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은 LoL 프로게임단 ‘드래곤x’를 후원한다. BMW, 도요타 등 자동차 업체도 e스포츠팀에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올해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34.5% 증가한 15억9200만달러(약 1조9400억원)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