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 영업구역 시·군·구에서 10개 광역권으로 확대 추진
금융위는 지역기반 서민금융 체계 붕괴 우려해 반대 입장
법 개정되면 신협 조합원 세제 혜택 없애고 규제 강화할 듯

"신용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우리 위원회안으로 제안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
"정무위원장님! 혹시 발언…"
"네. 금융위원장님."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지금 의결하고자 하는 신용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 잠깐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3월 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의사록의 일부다.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신용협동조합법(신협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급히 발언 기회를 요청해 마지막 발언을 했다. 은 위원장은 신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수 영세조합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지역 기반의 서민금융시스템이 붕괴돼 신협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의 마지막 요청에도 신협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고, 오는 19일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법사위만 넘어서면 본회의는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 있는 만큼 법안 처리의 9부능선을 지난 셈이다.

◇법 바뀌면 부산에 있는 신협 조합이 경남에서도 영업

대전 신용협동조합 중앙회 모습.

신협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는 건 1960년 첫 신협 조합이 출범한 이후 60년 동안 유지해온 지역 기반의 풀뿌리 서민금융 체계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협법 개정안의 핵심은 신협의 영업구역을 의미하는 공동유대 범위를 시·군·구 단위에서 10개 광역권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10개 광역권은 서울, 인천·경기,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광주·전남, 충북, 전북, 강원, 제주 등이다. 지금은 부산시 중구에 있는 신협 조합은 부산시 중구에서만 영업이 가능한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부산시 중구를 넘어서 울산시나 경남 하동에서도 조합원을 모으고 수신과 대출 영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업구역 확대는 신협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현행 제도에서는 영업기반이 너무 제한적이라 조합의 성장에 제약이 크다는 게 신협의 주장이다. 지역에서 아무리 많은 수신을 받아도 대출을 해줄 사람이 없다보니 돈이 금고에 쌓이고만 있다는 것이다. 작년 9월말 기준으로 신협의 총자산은 99조8399억원으로 새마을금고(185조100억원)의 절반 수준, 농협(394조9352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수협(32조5050억원)보다는 3배 정도 많다.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신협의 영업구역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영업구역이 확대되면 조합간 외형 경쟁과 영리추구가 심화되고, 대도시 위주의 여·수신 경쟁이 이뤄져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이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협의 영업구역을 공동유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신협의 존재 이유는 지역주민에게 금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신협은 애초에 지역 공동체의 상호부조를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법인인데 돈을 더 벌겠다고 영업구역을 광역화하는 건 설립목적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신협의 영업구역이 확대되면 다른 상호금융조합도 영업구역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호금융조합은 신협뿐 아니라 농협,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모두 영업구역이 시·군·구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신협만 영업구역을 확대하면 다른 상호금융조합도 너나할 것 없이 영업구역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상호금융조합이 3500여개에 달하는데 이들 조합의 영업구역이 광역화되면 사실상 작은 조합은 경쟁에서 밀려 사라지고, 크고 작은 저축은행 수백 개가 새로 생기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 금융산업은 은행에서 시작해 저축은행과 보험, 카드 같은 2금융권, 지역 기반의 상호금융조합, 그리고 저신용자를 위한 대부업 등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구조"라며 "상호금융조합이 저축은행화하면 지역 서민들의 금융수요에 공백이 생겨 금융 체계 전반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부실 영세조합 폭탄 터지나

금융위가 신협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는 신협 조합의 부실 가능성이다. 영업구역이 넓어지면 일부 대형조합의 독과점화 현상이 심화돼 다수의 영세조합은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9월말 기준 지역신협 668개 조합 가운데 자산이 5000억원 이상인 대형조합은 지사무소를 평균 4.1개 가지고 있는데 비해 자산 1000억원 이하의 영세조합은 지사무소가 0.4개에 불과하다.

신협은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조합간 자산확대 경쟁이 대규모 부실로 이어지면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80개 조합이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했다. 신협 조합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금만 4조7000억원에 달한다. 2004년 이후에도 209개 신협 조합이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지금도 64개 신협 조합이 구조조정 중이다.

금융위는 신협의 자금운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업구역이 확대되면 여유자금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도 있고 신협의 여신심사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무리한 자금운용은 조합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협의 내부통제시스템은 다른 상호금융조합에 비해서도 부실한 편이다. 지난해 신협에서는 23건, 61억원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자산 규모가 4배나 많은 농협(19건, 79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신협은 이같은 논란에 공동유대 범위를 적절하게 관리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신협 관계자는 "법 개정만으로 신협 조합의 업무구역이 모두 확대되는 게 아니라 중앙회장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중앙회 차원에서 금융 소외지역과 소형조합을 우선해서 영업구역을 넓히는 등 적절하게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건전성 우려에 대해서도 "신협의 부실은 대부분 영세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공동유대 확대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부실에 대한 우려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협 관계자는 "신협은 다른 상호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업구역이 매우 협소하다"며 "인구 유출이 심해지는 농촌조합은 공동유대 확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되면 신협 조합원 세제혜택 없앨 듯

금융위도 신협이 주장하는 영업 기반 확대의 필요성에 일부 공감하고 있다. 신협의 영업 기반 확대를 위해 비조합원에 대한 대출한도를 농협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이유다. 상호금융조합도 일정 한도에서 비조합원에 대출을 할 수 있다. 신협과 수협, 산림조합은 당해연도 신규대출의 3분의 1까지 가능한데 농협은 전년도 대출잔액의 2분의 1까지 비조합원 대출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신협법 시행령을 개정해 비조합원 대출한도를 농협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재무건전성이 우량한 조합에 한해서 운영하고 있는 공동유대 확대제도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현재는 조합 주사무소가 위치한 읍·면·동에 인접한 3개 이내의 동 또는 2개 이내의 읍·면에 한해서 공동유대를 확대할 수 있는데, 앞으로 감독규정을 개정해 주사무소가 위치한 시·군·구에 인접하는 읍·면·동까지 영업구역을 넓힐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국회에서 신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 완화 대신 규제 강화 카드를 꺼낼 계획이다. 우선 금융위는 신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신협이 누리고 있는 상호금융조합 세제 혜택을 없앤다는 방침이다. 상호금융조합원은 출자금(1000만원 한도) 및 예탁금(3000만원 한도)에 대한 배당·이자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다. 영업구역이 광역화되면 신협이 사실상 저축은행과 경쟁하게 되는 만큼 상호금융조합에 대한 혜택은 회수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신협 조합원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도 신협 조합원에 대한 비과세 혜택 폐지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협 조합에 대한 건전성 규제와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관련 규제도 2금융권 수준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신협은 "신협의 평균 예대율은 약 72%로 금융업계 최저 수준"이라며 "준법감시인 도입 등 추가 규제는 법 개정 이후 조합의 건전성과 자산규모의 변화 등을 고려해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신협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법사위에서 일부 의원이 신협법 개정안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법사위는 만장일치가 관행이다. 하지만 전국에 632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신협이 법 개정안 처리에 사활을 걸고 있어 국회 통과 가능성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