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인가’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들이 잇따라 나오자, 방역 일선에서 확산 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성급한 방역정책 전환과 느슨해진 시민의식으로 인해 몇 달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고등학교 자습실에서 방역업체 관계자가 소독을 하고 있다.

12일 한국방역협회 서울지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들은 최근 ‘생활방역’ 전환에 맞춰 서울 시내 마을버스들을 소독해왔다. 이들은 각 구청 등과 협의해 다중이용시설과 방역에 취약한 노인복지시설도 중점적으로 방역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방역협회 회원들은 각급 학교의 정상 등교 수업을 앞두고 학교와 유치원 등을 돌며 마무리 작업까지 참여했지만, 최근 이태원에서 ‘클럽 감염’이 확산돼 지금껏 해 오던 방역 작업이 무색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원용남 한국방역협회 서울지회장은 "이제는 좀 괜찮아지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태원 클럽 감염 사태가 터졌다"며 "우리보다도 의료진이나 공무원 등 긴 시간 애쓰고 힘든 사람들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줄곧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며 방역일선을 지켰던 보건소 직원들과 역학조사관 등도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다시 코로나가 확산되는 상황에 암담해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건소 직원 A씨는 "지난 ‘황금 연휴’ 때도 보건소를 지켜야 했던 동료들이 ‘결국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노는 사람 따로 있다’고 말했다"며 "긴 싸움인 점을 모두 알고 있지만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역학조사관 B씨도 "그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가 여유가 조금 생기던 상황이었다"며 "아직까지 관할 지역에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수도권 밖에서도 환자가 나오고 있어 언제 우리지역까지 확산세가 미칠지 몰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선별진료소에서 사람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생활 속 거리두기’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내고 "각종 사회활동 가운데 필수적인 활동 위주로 점진적 완화를 계획하되 유흥시설 등에 대한 강력한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의 감염 확산 정도에 따라 안정적 상황이 될 때까지 완화 계획 일체를 유보하는 특단의 조치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의협은 또 "최근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몇 사람의 일탈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거리에는 이미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활보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손을 씻는 횟수도 이전보다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나의 방심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기준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는 102명이다. 지난 6일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용인 66번(남·29)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고 엿새만에 100명을 넘어섰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6일까지 서울 이태원에 소재한 클럽이나 주점 등을 방문한 사람은 외출을 자제하고 자택에 머무르면서 증상에 관계없이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