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터진 라오스 댐 사고 손해배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이번에는 LG화학 인도 공장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한국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형 사고를 터뜨린 기업이 다국적 기업일 경우 현지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더 빠르게 퍼질 수 있어 한국기업들의 안전 의식이 더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기업이 들어와 사업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자국 기업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에서 사고가 나면 국가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들은 철저한 사전 예방을 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 소재를 막론하고 우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 정부 "LG, 공장 과실 없었다는 점 증명해야"

지난 7일 새벽(현지 시각)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州) 비사카파트남. 모두 잠든 새벽 3시쯤 마을에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LG화학 계열 LG폴리머스인디아 공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곧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LG화학 공장의 탱크에서 누출된 화학제품 원료 스타이렌 모노머(SM)였다.

지난 7일(현지 시각)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사카파트남의 LG폴리머스인디아 화학공장 가스 누출 사고로 부상한 주민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

가스는 공장 반경 3km 인근 마을을 덮쳤고, 주민들은 호흡 곤란과 구토 증세를 호소하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쓰러졌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길가에는 사람들과 소와 개들이 뒤섞여 쓰러져 있었다. 머지않아 지역 주민 3000여명에 대한 대피령이 내려졌으나 결국 주민 12명이 사망했고 1000여명이 입원했다.

LG폴리머스인디아는 1961년 설립된 인도 최대 폴리스티렌 수지 제조업체인 힌두스탄 폴리머를 LG화학이 1996년 인수한 뒤 사명을 바꾼 회사로, 직원 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고는 공장 내 탱크에 보관된 SM 가스가 누출돼 발생한 것으로 현지 경찰은 추정했다.

사고 직후 인도 정부는 LG폴리머스 공장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연방정부 관계자는 "조사 결과 환경 규정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공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했고, 안드라프라데시주 산업장관인 메카파티 고우탐 레디는 "LG폴리머스 측의 부주의가 가스 누출로 이어졌으며, 이에 따라 경영진은 가스 누출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은 독성물질 관리 소홀 등의 혐의로 LG폴리머스 측을 입건한 상태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피해 보상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LG화학 측은 "현지 마을 주민의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주민들과 임직원의 보호를 위해 최대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전담 조직을 꾸리고 의료·생활용품 등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 2년 전 SK건설 라오스 댐 붕괴 사고 보상논의 아직 안끝나... SK건설 "마무리 국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벌이다 사고를 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7월 23일 라오스 남동부의 아타프주에서 SK건설이 시공한 수력발전소 보조댐이 붕괴했다.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5억톤(t)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쓰나미처럼 덮친 흙탕물은 지역 마을을 수몰시켰다. 당시 사고로 49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 6600여명이 발생했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라오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신규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전면 보류했다.

2018년 7월 23일(현지 시각)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주(州)에서 SK건설이 시공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보조 댐이 무너져 인근 마을이 흙탕물에 수몰됐다.

수력 발전용으로 착공한 댐 건설 사업은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각각 26%와 25%를, 태국 기업과 라오스 국영기업이 나머지 절반을 출자해 진행됐다. 준공을 7개월 앞두고 일어난 붕괴 사고 원인에 대해 당시 라오스 국가 조사위원회는 ‘인재(人災)’라고 결론 내렸다. 조사위는 "적절한 조처로 막을 수 있었던 붕괴사고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당시 SK건설 측은 반박하고 나섰다. SK건설 한 관계자는 "조사위가 낸 결과는 사고 전후 실시한 정밀 지반조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등 과학적, 공학적 근거가 결여돼 있다"면서 "경험적 추론에 불과한 조사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붕괴사고 원인에 대해 라오스 정부와 SK건설이 맞서면서 사고피해에 따른 보상 주체와 범위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SK건설 측은 "조만간 협의가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댐 사고로 피해를 본 라오스 지역 주민들에 대한 구제 요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주민 5000명가량은 아직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임시 숙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들은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와 기업 등은 수력발전 사업에서 큰 이익을 얻을 것이지만 모든 것을 잃은 지역사회에 대한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SK건설과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해외 기업들도 책임 소재 따지는데 수년… 현지 여론 악화도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고가 터졌을 때는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임을 미루다가 사업 자체에 역풍을 맞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옥시레킷벤키저(RB)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이후 벌어진 옥시 불매 운동.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5월 출산 전후의 산모 4명이 폐가 굳는 미상의 폐질환으로 숨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폐질환 원인으로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를 원료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됐고, 이후 옥시 관계자들이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안전하다’는 허위 표시·광고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옥시 측은 청문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원인에 대해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옥시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현재 옥시 한국법인은 사고 대응을 주로 담당하고 있고, 사업 부문은 사실상 철수 국면이다. 락스만 나라시만 레킷벤키저 CEO는 지난해 12월에도 "한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은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과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차 사과했지만 그래도 국내 여론은 돌아서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외국 기업 공장의 가스 누출 사고 또한 전례가 있다. 1984년 12월 미국 석유화학기업인 유니온 카바이드가 보팔에 세운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 가스 40t이 누출됐다. 당시 2250여명이 사망했고 사고 휴유증으로 2만여명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 12월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미국 석유화학기업 유니온카바이드의 가스 누출 사고 이후 현지 주민들이 항의 운동과 회사 퇴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사측에 보상금으로 33억달러(약 3조5800억원)를 요구했지만, 5년간의 논쟁 끝에 유니온카바이드는 4억7000만달러(약 5100억원)을 내는 데 그쳤다. 회사 경영진들 또한 직무태만 혐의로 사망자 1인당 2000달러(약 240만원)씩 계산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는 데 그쳐 현지에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주민들은 후유증을 호소하며 추가 보상을 요구했지만, 그 사이 유니온카바이드가 파산해 추가 보상 논의는 지지부진해졌다.

미국 최악의 환경 참사로 기록된 ‘딥워터호라이즌’ 폭발 사건은 책임 소재를 두고 아직 법적 공방 중이다. 2010년 2월 영국 에너지회사 BP가 운영하던 멕시코만의 해저 유정에서 2개월 넘게 기름이 흘러나왔고, 결국 시추선 딥워터호라이즌이 폭발해 현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11명이 사망했다.

미 법원은 "사측이 작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등 총체적 태만을 저질렀다"며 "안전보다는 시간과 돈을 절약하겠다는 욕심이 우선시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확한 기름 유출량과 벌금 액수를 놓고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