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에 홍원식 회장 명예훼손 입건으로 기업 이미지 더 나빠져
회사 실적도 엉망…2019년 영업이익 2018년 대비 95% 줄어
전문가들 "경영 쇄신·윤리경영 방안 찾지 않으면 소비자 외면 계속될 것"

2013년 5월 6일 서울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피해 대리점 업주들이 남양유업 제품들을 쏟아 놓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최근 경쟁사에 대한 명예 훼손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초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육아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경쟁사와 경쟁사 제품을 비방하는 게시글과 댓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논란이 일은 후 남양유업(003920)의 사후 대응은 불을 더 키웠다. 입장문을 통해 경쟁사의 명칭을 재차 언급하며, 그 회사의 농장이 원전과 4km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면서 홍보 경쟁이 과열된 상황에서 실무자와 홍보대행사가 빚은 일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릇된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는 경쟁사를 다시 언급하며 뒤끝을 남기고, 경영진과는 무관하다며 실무진에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한 해명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리점 갑질 논란 때부터 불기 시작한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네티즌들은 "남양이 남양했다"며 남양유업에 대한 비아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의 아기들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해 '고급 우유 브랜드'로 자리 잡았던 남양유업은 이제 소비자들이 기피하는 브랜드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남양유업 나주 공장 전경.

◇ '아 옛날이여'...남양하면 '고품질'이었는데
남양유업은 1964년 설립됐다. 비료사업을 하던 고(故)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은 한국의 아기들이 일본산 탈지분유와 미국산 조제분유를 먹고 자라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인 체질에 맞는 분유를 만들기 위해 남양유업을 창업했다. 회사명인 '남양'은 남양 홍씨의 본관에서 따왔다. 홍 명예회장은 창업 이후 분유 개발에 매진했다. 덴마크 등 해외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노력한 결과, 창업 3년 만인 1967년 1월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남양분유'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남양유업은 1970년대엔 '건강한 2세'라는 슬로건을 걸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진행했다. 많은 우량아들이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남양'은 건강한 아기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다. 1980년부터는 남양3.4우유를 생산하며 우유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4년엔 DHA가 함유된 아인슈타인 우유를 출시하며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남양유업은 특히 국내에선 분유 사업 선구자 역할을 했다. 모유와 최대한 비슷한 분유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매진했다. 1990년대엔 10여 년간 아기 똥을 관찰해 모유의 자기방어 성분인 '락토페린'을 배합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남양유업은 중국과 베트남, 대만 등에 분유를 수출하며 세계 분유 시장에 도전했다. 지금 베트남에선 남양유업 분유가 '최고급 분유'로 통한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할 품목 리스트'에도 남양분유는 빠지지 않는다.

2010년엔 프렌치카페 믹스 커피를 출시하며 맥심이 지배하고 있던 믹스 커피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2014년엔 유럽에 원료형 커피를 첫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커피 사업은 남양유업의 새 먹거리가 됐다.

◇ 갑질 논란에 품질 문제 이어지며 불매 대상된 남양

오랜 역사를 거쳐 고급 이미지를 다져온 남양유업은 2013년 본사 영업사원이 지역 대리점 직원을 상대로 한 막말이 녹음된 음성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회사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수요가 많지 않은 상품들을 대리점에 강매하는 '밀어내기 갑질' 정황도 함께 포착됐다. 여직원이 결혼이나 출산을 하면 계약직으로 전환해 강제 퇴직시켰다는 시민단체의 고발도 나왔다.

갑질 논란에 이어 품질 논란도 일었다.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서 녹가루가 나왔다는 소비자 고발이 나온 것이다. 남양유업 측은 "녹슨캔은 원천적으로 생산될 수 없다"며 무결점 안심 공정을 검증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식약처는 '부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학계 등 전문가 자문을 통해 확인했다'며 남양유업에 용기 개선을 권고했다.

계속된 논란에 소비자들은 하나둘 남양 제품을 멀리했다. 맘카페엔 그동안 남양분유를 먹였는데, 다른 회사의 제품을 먹이고 싶다며 대체 상품을 추천해달라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소비자들의 외면 현상이 짙어지자 남양이 자사 로고를 넣지 않거나 가리고 판매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남양유업은 아이스크림 디저트 카페 '백미당'을 론칭하면서 남양의 브랜드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남양F&B의 사명을 건강한사람들로 바꾸기도 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자신의 외조카인 황하나씨의 마약 투약 혐의 논란 때 발표한 입장문.

◇ '오너 리스크'까지 터지며 브랜드 이미지 추락

회사가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오너 일가의 비위 혐의까지 불거졌다. 남양유업 창업주인 홍두영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남양유업은 "황씨 일가족 누구도 회사와 관련한 일을 하거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회사 경영과 무관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준법 정신과 책임감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홍원식 회장이 직접 입장을 밝혔다. 홍 회장은 지난해 6월 "외조카 황하나가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숙여 사죄한다"면서 "외조카의 일탈을 바로잡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남양유업이 여러 논란을 겪는 동안 홍 회장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었다.

오너리스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황하나씨의 마약 투약 논란이 채가시기도 전에 경쟁사 비방 의혹 논란에 홍 회장이 얽힌 것이다. 경찰은 남양유업이 홍보대행사와 함께 경쟁사를 비방하는 글을 게시하는 작업을 홍 회장이 주도했거나 알고도 묵인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홍 회장 입건 사실이 알려진 후 남양유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양' 제품 리스트가 돌며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남양유업이 생산한 제품인지를 판별해주는 '남양유없'이라는 사이트도 현재 베타 서비스 중이다. 이 사이트는 구입하려는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하거나 시리얼 번호를 입력하면 남양제품인지 아닌지 알려주는 게 목적이다.

◇ 미운털에 실적도 악화…'정도 경영'이 유일한 답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남양유업의 이미지 추락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억1735만원을 기록했다. 2018년 영업이익(85억8740만원)에 비해 95%나 감소했다. 실적 악화에 남양유업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며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회사 상황이 이런데도 홍 회장은 작년 영업이익의 4배에 달하는 16억여원을 연봉으로 받았다. 남양유업은 최근 비상경영 상황에 홍 회장이 상여금 30% 삭감과 하계 휴가비 50% 반납 등의 방식으로 급여 반납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양유업이 공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홍 회장의 연봉 16억1991만원 중 상여금은 없었다. 사내 임직원 복리후생 제도 지원 기준에 따라 지급된 기타근로소득만 200만원 있었을 뿐이다. 기타근로소득 200만원이 전부 하계 휴가비라고 봐도 홍 회장이 반납할 급여는 100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남양유업이 경영을 쇄신하고 기업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대한 갑질부터 갖가지 논란으로 고객을 계속 놓치고 있다"며 "이미지 쇄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오너 경영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 회사 운영을 맡길 생각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윤리 경영을 위한 준법감시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회사 차원의 반성과 개혁을 위한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남양유업이 스스로 자정하지 않는다면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등 시장에선 계속 남양을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