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서울대 교수 "韓노동시장 수요·공급 엇박자" 일침
4차혁명에 高생산 인력 수요 증가…"컴퓨터·기계로 대체 못해"
임금 양극화 심화…'중간 밀집형' 인력 양산하는 교육 개혁해야

우리나라 노동시장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심화되면서 교육 시스템을 비롯한 인력양성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노동경제학계 거장인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한국노동경제학회장)는 이 때문에 한국이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 흐름이 요구하는 노동 경쟁력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컴퓨터,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고생산 인력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중앙 밀집형 인력을 양산하는 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8일 김대일 교수는 한국경제학회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임금분포 확대와 노동력 수급 불균형’ 논문에서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노동시장에서 최상위권(생산성 기준)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보통신(IT) 업종에서 알고리즘이나 아키텍처를 다루는 직업군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최상위권 노동자를 ‘목표를 설정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핵심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고급(high-brow) 판단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김 교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가 걸림돌이 될 수 있겠지만 컴퓨터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청소를 할 때 어느 곳이 지저분한지 눈으로 파악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판단하는 것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판단을 하는 업무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아도 컴퓨터나 기계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노동시장은 고학력화로 상위권 자체는 늘었지만 질적으로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산업기술인력 실태 및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기준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친환경 선박 ▲드론 ▲지능형 로봇 등 4대 신산업 분야의 부족 인력은 4755명이다. 평균 부족률은 4.3%로 주력산업 평균 부족률(2.2%)의 2배다. 4대 신산업 내 석·박사급 고급인력 부족률은 9.1% 수준이다.

최상위층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금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임금 격차는 1990년대 초중반 이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 2009년 이후부터 하위권과 중위권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축소되는 양상이 있지만 중위권과 상위권 노동자 간 임금격차는 최근에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중위권과 상위권 인력 사이 임금 격차 확대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임금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반영한다고 전제했을 때, 생산성이 더 높은 노동자일수록 임금이 높아지는데다 희소성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김 교수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시장 등에서 우리나라 경쟁력이 퇴화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고급 인력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동공급 체계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대를 보이는 등 급격히 하락하는 원인 중 하나로도 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 밀집형 인력을 양산하는 국내 교육 체제 개혁이 시급하다"며 "최상위권으로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교육 체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진부할 정도로 오래된 지적이지만 실제 교육에서 변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이 학생들의 판단 능력에 제약을 가한다고 강조했다. 중·고등학교 교육이 수능과 입시에 중점을 두면서 교과과정을 벗어나는 사고 자체를 어렵게 만들면서다. 교과서나 시험에서 다뤄지는지 여부만 강조하다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외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경제협력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OECD는 3년마다 회원국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 수리 및 과학 능력을 평가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평가 점수가 하위나 상위권이 아닌 중앙에 밀집돼있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는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다만 최상위권이 되도록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최상위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의 유연성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