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5층 다목적실에 나타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진한 남색 양복에 줄무늬 넥타이 차림이었다. 손에는 미리 준비한 사과문이 들려있었다. 연단에 올라 어두운 표정으로 취재진을 잠시 응시한 이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이날 이 부회장은 10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총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며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다. 저의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단상 옆으로 몸을 옮겨 허리를 굽혔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5년 만의 ‘대(對)국민 사과’였다.
특히 이 부회장은 자녀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신 뒤에야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고 말했다.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제 이후의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설명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다.
이 부회장은 노사 문제에 관해 사과할 때도 허리를 숙였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삼성의 노조 문제로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은 "2~3개월 거친 전례 없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며 밝힌 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삼성전자 측은 이 부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 미리 별도의 질의응답은 없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현장에 있는 한 기자가 이 부회장이 입장문을 읽은 직후 예정에 없이 질의를 하려고 했지만 이 부회장은 그대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기자회견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고려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다. 오전부터 선착순으로 배포한 비표를 받은 90명의 취재진만 입장이 허용됐고, 모든 취재진은 손 소독을 하고 체온 체크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갔다. 비표는 오후 2시 16분쯤 배부가 끝났다. 좌석도 옆 사람과 1m씩 떨어진 채 앉아야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삼성해고노동자고공농성공대위’ 등 시민단체 회원 10여명은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 부회장을 규탄했다. 이들은 ‘이재용을 감옥으로’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대국민 사과 이전에 명확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이재용을 감옥으로"라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