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LNG 프로젝트, 中 16척 수주 따내
내심 독식 자신했던 韓 조선업계 충격
위협 상대로 떠오른 중국…화끈한 정부 지원 덕

최대 120척에 달하는 카타르 LNG 운반선 수주전(戰)에서 내심 독식을 자신했던 한국의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건조 기술력 등에서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던 중국이 카타르로부터 16척의 수주를 따낸 것이다. 정부의 막대한 금융 지원과 저가 수주 전략을 등에 업은 중국이 한국 조선업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중공업의 LNG 연료추진 원유운반선.

◇"세계 최대 가스 소비국 中 무시 어려웠을 것"

22일(현지 시각) 카타르 국영석유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QP)은 중국 국영 조선그룹 중국선박공업(CSSC)의 후동중화조선과 LNG선 슬롯(도크) 예약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슬롯 예약은 정식 발주 전에 건조공간을 확보하는 절차다. 이후 카타르 정부가 선사와 용선계약을 한 뒤 선사가 조선사에 발주를 넣게 된다. 슬롯 예약이 이뤄진 만큼 후동중화조선이 사실상 건조를 맡게 되는 구조다.

이번 계약에서 중국은 카타르 정부로부터 총 16척의 LNG선 건조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인도 시기는 2024년과 2025년이다. 중국이 카타르 정부에 제시한 LNG선 한 척의 건조 비용이 1억8000만달러인 점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 수주한 16척을 모두 건조할 경우 최소 28억8000만달러(약 3조5429억원)의 일감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계약은 카타르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LNG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두고 LNG선 발주 논의를 진행했던 조선업체는 총 4곳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등 국내 조선 3사와 후동중화조선 등이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이자 QP의 최고경영자(CEO)인 사드 빈 셰리다 알 카비는 전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초대형 LNG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올여름까지 최소 60척에서 최대 120척의 LNG선을 발주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이 LNG선 수주를 따낸 배경에 중국 정부의 금융 지원과 저가 수주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내세운 가격 경쟁력과 중국 은행의 자금 지원, 중국이 세계적인 가스 소비국인 점 등을 카타르 정부가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이자 카타르페트롤리엄 최고경영자(CEO)인 사드 빈 셰리다 알 카비가 중국선박공업(CSSC)과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중국, 이미 10년 전부터 한국 견제"

중국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을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독일 해운업체 하팍로이드가 올해 발주할 예정인 대형 컨테이너선 6척(1조35000억원 규모)도 중국 후동중화조선과 장난조선의 입찰이 유력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 차원의 선박금융 지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선사들이 선박을 발주하면, CSSC의 금융 계열사가 계약대금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중국 금융권은 선사로부터 선박을 인수한 뒤, 그 선사에 다시 대여(재용선)해주는 ‘세일 앤드 리스백’(S&LB) 사업도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이번에 수주한 16척을 성공적으로 건조할 경우 한국의 시장 장악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는 한국이 전 세계 90~100%의 LNG선 물량을 독점해왔지만, 이번 카타르 수주전에서 중국이 저렴한 가격에 LNG선을 성공적으로 건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경우 한국 조선업계에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진명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저가 수주와 정부 지원 등을 앞세워 한국 조선업계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을 키우거나 정부가 외교적 방법 등 중국을 견제할 방법을 모색하는 등 뻔한 해결책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중국 조선소 CSIC의 10만DWT(Deadweight Tonnage·배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 톤수)급 조선대.

한국 조선업계는 일단 카타르에서 추가 수주를 노리고 있다. 카타르가 올여름까지 최소 60척에서 최대 120척까지 슬롯 계약 체결을 예고한 만큼 추가 발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가져간 16척을 제외하고도 최소 44척의 발주가 남은 셈이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후동중화의 LNG선 연간 생산능력은 5척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 조선 3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50척에 달한다.

아울러 이번에는 중국이 가져가긴 했지만, 지연될 수 있었던 카타르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진행된 것만 해도 희망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 사태와 유가 폭락에 따라 카타르 정부의 LNG 프로젝트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국내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비록 첫 발주는 중국에 빼앗겼지만, LNG선 건조가 한국의 주력 분야인 만큼 나머지 물량은 한국이 가져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