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자금 마르자 '최대 1조원 유상증자' 카드 꺼내
한진칼, 유상증자 대금 3000억원 마련 어려워
장부가 2900억 칼호텔 등 자회사 지분 매각 가능성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003490)이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구안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모회사 한진칼(180640)또한 자금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 관건이다. 한진칼이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칼호텔네트워크 등 자회사 지분 일부를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와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5000억~1조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위해 주요 증권사들과 협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과 2017년에도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각각 5000억원,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대한항공 여객기들이 멈춰 서 있다.

코로나 여파로 대한항공 국제선 여객이 90% 이상 감소하면서 이달 중 보유 현금을 모두 소진할 위기에 처하자 고육책으로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작년 말 기준 대한항공의 현금 보유량은 총 1조6000억원으로, 항공기 리스 비용 등 매달 나가는 고정비만 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에는 향후(미래)에 발생할 매출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 6200억원 어치를 발행했으나 이 또한 이달 안에 갚아야 하는 회사채 등을 감안하면 곧 고갈된다.

문제는 현재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자금 사정 또한 좋지 않다는 데 있다. 대한항공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한진칼은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 약 3000억원의 유증 대금을 마련해야 한다. 작년 말 기준 한진칼이 보유한 현금은 522억원이지만, 이마저 올해 코로나라는 대형 암초를 만나면서 대부분 소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2018~2019년엔 대한항공으로부터 배당이라도 받았지만 올해는 이 또한 없었다.

대한항공과 함께 한진칼도 유상증자에 나서면 대규모의 신규 자금이 유입될 수 있으나 경영권 분쟁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쉽지 않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모펀드 KCGI,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등 이른바 ‘반(反) 조원태 연합’은 현재 46%의 지분을 끌어모았다. 조원태 회장 측 지분이 40% 선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주주배정 유상증자 카드는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한진칼 선택지는 크게 2가지다. 일단 또 다른 자회사 지분 매각을 추진할 수 있다. 한진칼의 자회사로는 정석기업과 칼호텔네트워크, 한진관광, 토파스여행정보, 제동레저, 진에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지분 100%를 보유한 칼호텔네트워크나 제동레저의 지분 일부를 팔거나, 정석기업 혹은 정석기업이 소유한 부동산 등을 최우선으로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칼호텔네트워크는 장부가가 2900억원으로 지분을 절반이라도 매각하게 된다면 대한항공의 유동성 리스크를 상당 부분 잠재울 수 있다.

이지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과감한 금융 지원을 주저하는 와중에 한진그룹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의 지분을 제외한 자회사 지분을 최대한 매각해 재원을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 같은 자구책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원태 회장이 믿을만한 제3자를 유치해 한진칼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진칼 정관에 의하면 한진칼은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행주식총수 한도의 30%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늘릴 수 있다.

이 경우엔 경영권 분쟁과 자금난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지만, 요즘 같은 불황기에 경영권 분쟁 때문에 비교적 비싼 한진칼 주식에 3000억원이나 투자할 수 있는 주체는 많지 않다는 점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