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학회장·KDI·대학교수 등 인터뷰
"親노동·反기업 정책 등이 경제 기저질환 원인
확장재정 불가피하지만 미래세대 부담 줄여야"

주요 경제학회장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 정책과 탈원전을 비롯한 산업 정책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거대 여당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 지금이 한국 경제가 앓고 있는 기저 질환에 대한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선거 결과를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이해찬 상임선대위원장과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국민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분배 기조 유지될 것… 반대파 의견 경청해야"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의 구체적 실행 정책 가운데 이미 부작용이 드러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은 속도조절이 있겠지만, 분배에 치중하는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봤다.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교수)은 "해외 주요국에서도 기본소득을 주는 등 현재 상황은 분배 관련 정책을 실험해보기 좋은 조건"이라면서 "이번에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경제 정책을 마련하는 데 큰 참고 사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 감소가 일어나고 있으며 재정이 악화되는 상황인데, 단순히 선거에서 이겼다고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지지로 본다면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인 이해가 관련된 탈원전 등의 정책을 유리한 환경 속에서 마구 밀어붙일 수 있어 우려된다"면서 "우리나라는 환경 문제에 이념적 편향성이 크고 정책 입안자 자리에 전문가들이 배제된 상황인데,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런 정책을 계속 밀고나갈 것"이라고 봤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진영 논리로 승부해야하는 유인이 사라진 지금, 귀를 열고 반대쪽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야 할 때"라면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친(親)노동 정책, 반(反)기업 정책 등이 우리 경제가 앓고 있는 기저 질환의 원인"이라고 했다.

현 정부 경제 정책의 근본적 방향이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총선에서는 정책 성과에 대한 비판이나 방어가 대부분이었고, 경제 정책이라고 짚을만한 것이 없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이미 방향을 수정한 상태이고,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과감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김란희

◇코로나發 집값 하락, 규제 효과 아냐…공급 정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거대 여당 탄생으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조세 저항 심리를 반영한 야당 몰표를 제외하면, 대다수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현 정권의 ‘집값 누르기’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표심을 잡기 위해 일부 서울 지역구 여권 후보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을 공약했으나, 당선을 위한 선심성 공약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이병태 교수는 "현 정부 정책입안자들은 부동산을 시장에 의한 결과로 보지않고, 투기꾼들에 의한 것으로 보고 부동산 투자는 잘못됐다는 이념에 지배받고 있어 정책 방향의 수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권의 종부세 완화 공약은) 특정 지역구 후보들의 사기성 공약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인호 학회장은 "풍선효과가 엄청 나타나는 식의 부작용이 없다면, (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 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면서 "설령 정책 기조를 바꾸려고 해도, 금리가 최저수준인 상태에서 LTV, DTI 등 대출 규제를 풀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어 (규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서울 등의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정부의 ‘규제효과’로 착시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세계 경제 침체에 따라 국내 주택 수요가 줄어들며 가격이 떨어진 것을 부동산 규제 효과로 오인(誤認)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부동산 공급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했다. 수요 통제에만 집착하는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공급을 통해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김현욱 교수는 "지금 집 값이 내려갔다고 안심하지 말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을 마련할 때"라면서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집값 때문에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정된 재정 효율적 사용해야...2년 뒤 대선 앞두고 포퓰리즘 우려"

전문가들은 생산과 소비가 모두 타격을 입는 전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확장재정 기조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미래 세대에 너무 큰 부담으로 남지 않도록 신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실패를 재정으로 메꾸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가 재정이 장기적으로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다. 코로나19 경제 타격으로 세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2년 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 경쟁이 강화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당분간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재정이 불가피한 선택인만큼,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교수)은 "확장재정은 어쩔 수 없고,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면서 "고용을 유지하고 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쪽에 쓰게 되면 민간 활력을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장재정 유지로 인한 재정 파탄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병태 교수는 "현 정부는 집권 이후 내내 경제 침체기에나 쓰는 확장 정책을 쓰면서 정책 실패를 재정으로 덮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완전히 포기한 최초의 정부"라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이런 문제가 구조화돼 미래 세대의 부담이 막중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현욱 교수는 "지금 당장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극복될지라도, 확장재정으로 경제 활력을 살려 경쟁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부담은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감당하게 된다"고 했다. 이인호 학회장은 "재정 지출을 하면 한국은행도 국채 매입으로 동원되는데, 통화 증발 등 건전성 위험을 가져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