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에서 ‘슈퍼 여당'이 탄생한 가운데 부동산 공약을 1호로 앞세운 야권 후보들이 상당수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유권자가 급증한 동네를 집중 공략하거나 보유세 인하 추진 등 맞춤형 정책 공약을 했다. 특히 정치 신인과 탈북민, 지역구 변경 등 약세 조건을 극복해 눈길을 끈다.

4·15 총선 서울 송파을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배현진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 앞에서 시민과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계 입문 3년 만에 금배지를 달게 된 배현진 서울 송파을 당선자는 ‘헬리오시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동네 맞춤 공약을 내세웠다. 1호 공약은 보유세 인하로, 송파구에서 1만여가구 대단지 부촌으로 알려진 헬리오시티의 표심을 확실히 끌어모았다는 평가다.

배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헬리오시티가 있는 가락1동에서만 9600여표를 모았다. 지난 2018년 6.13 재선거 때는 수십여 표를 얻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가락1동은 지난 총선 때 유권자가 750여명에 불과한 동네였지만, 헬리오시티 입주 후 유권자가 2만명 가까이 늘었다.

첫 탈북민 출신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태구민 당선자는 종부세 개정을 공약 1호로 내세웠다. 종부세 대상 주택가격 기준을 12억으로 상향하고 실거주자 종부세는 면제하는 방안과 상속·증여세율 인하,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강남 주민의 민심을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다. 태 당선자 스스로도 "지역현안 문제를 시장경제의 원리로 푸는 것이 저라고 어필했다"고 당선 원인을 분석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이마트 만촌점 앞 사거리에서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김부겸 후보의 지지자와 시민들이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의 ‘투기과열지구 해제 적극 추진' 현수막 아래에서 김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현역 의원이자 전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후보를 꺾고 당선된 주호영 대구 수성을 당선자의 1호 공약은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해제’였다. 옆동네인 수성을에서 지역구를 바꿔 수성갑에 출마한 주 당선자는 코로나19 확산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대구 지역의 유일한 투기과열지구인 수성구를 규제 지역에서 해소할 것을 공약 1호로 내세웠다. 경쟁자였던 현역 김부겸 후보 역시 뒤늦게 ‘한시적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내세웠지만 의제 선점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반면 ‘핀셋 부동산 공약'의 약발이 안 먹힌 후보도 있다. 일산의 집값 하락 요인으로 꼽히는 창릉신도시 등을 포함한 3기 신도시 전면 철회를 앞세운 경기 고양정의 김현아 미래통합당 후보는 카카오뱅크 출신의 금융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당선자에 패배했다. 이용우 당선자는 IT 전문가를 자처하며 일산에 부족한 영상·바이오 등 4차 산업 기반의 혁신기업 유치 등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시선이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쏠려 있는 와중에 정책을 내세운 공약이 당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다만 지역구에 부동산 이슈가 있는 경우 일부 호응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정권심판론 등 대립구도가 주를 이뤄서 정책을 투표 기준으로 삼은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송파을이나 강남갑, 대구 수성갑 등 부동산 이슈가 있는 부촌에서는 그간 정부로부터 세금 등으로 탄압받아왔다고 여겨 공약을 보고 야당 후보를 밀어주자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 실현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이 부동산 공약을 얼마든지 내세우고 당선도 될 수 있지만 의석수가 소수인 야당이 부동산 공약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보유세 감면 등 공약이 지역구 내에서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역부족해 입법까지 실현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