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새 명칭 설문조사
주민 반발에 "원래 이름은 '호수공원'"
"일산 지명은 일제의 잔재" 해프닝도
주민들 "고양시의 일산 지우기"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가 때아닌 ‘지명(地名)’ 논란을 겪고 있다. 고양시가 도시의 명물인 일산 호수공원의 이름에서 ‘일산’을 빼고 ‘○○호수공원’ 등 새로운 명칭을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자,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양시는 지난달 25일부터 일산 호수공원 현장과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호수공원 명칭 관련 시민 의견수렴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시는 호수공원의 명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고 있다며, △고양호수공원 △일산호수공원 △일산호수공원 △기타 등의 항목을 제시했다. 이미 고양시는 시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일산 호수공원 내 표지판에 일산을 뺀 ‘호수공원’ ‘고양시 호수공원’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고양시 호수공원 앞에서 호수공원 명칭 관련 현장 설문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호수공원은 1995년 일산신도시 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공원으로 총면적 103만 4000㎡(약 31만평)로 이뤄졌다. 여기에 호수면적만 30만㎡ 달해, 동양 최대 수준이다. 공원에는 5km의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가 감싸는 체육공원이 위치해, 일산 시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꼽힌다.

또 고양시는 지역 내 주요 시설물에 대해서도 일산이라는 지명을 빼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시설인 ‘일산아람누리’는 현재 ‘고양아람누리’로 표기법이 변경됐다. 또 고양시내 대표적인 박람회장인 ‘일산 킨텍스’는 ‘고양 킨텍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주민들은 갑작스런 호수공원 명칭 공모가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다. 25년간 잘 써오던 일산이란 이름을 갑자기 바꾸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산 주민으로 구성된 일산연합회 회원 200여명은 "고양시의 일산 죽이기"라며 시청에 단체로 민원을 넣기도 했다.

이에 고양시는 원래 호수공원의 정식 명칭은 ‘호수공원’이었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호수공원이 처음 생길 때 정식 명칭이 호수공원으로 정해졌다"며 "공원에 붙어 있던 ‘일산호수공원’의 이름을 바꿔놓은 것은 명칭을 정확히 결정내리기 전까지 임시 조치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시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일산 명칭을 없애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산연합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시청으로부터 "일산지명은 일제잔재의 명칭으로 논란이 있어, 일산의 이름을 삭제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서면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고양시는 이점에 대해 "일부 공무원의 잘못된 해석에 의한 답변"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고양시는 호수공원 내 ‘일산호수공원’이란 명칭을 지우고 ‘호수공원’으로 바꿔놨다.

일산이라는 이름이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일산은 원래 ‘한산’이라고 불렸는데, 일제가 ‘한 일(一)’에 ‘뫼 산’자로 바꾸는 지명으로 바꿨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창지개명은 일산 뿐 아니라 경기도 내에서 용인이나 분당, 수원 등에서도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 1월 일제강점기에 바뀐 도내 옛 지명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전경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명칭 교체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고양시민 김예진(45)씨는 "하나의 지명이 브랜드 가치가 되고 금액으로 환산되기도 하는데, 20년 넘게 사용해온 명칭을 바꾼다는게 가치 하락과 시민들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호수공원과 꽃박람회 등으로 스토리가 입혀진 일산 브랜드를 굳이 지우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일산주민 박수진(33)씨는 "일산이란 이름이 일제의 잔재라면 일산동구, 일산서구, 일산동, 일산역 등 행정명칭도 다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건 속된 말로 ‘오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고양시의 명칭변경을 환영한다는 입장도 있다. 덕양구 주민 김유현(32)씨는 "예전에 고양시 하면 일산이 떠올랐던 건 사실이지만, 요즘에는 삼송이나 원흥지구 등 인근 신도시가 주목을 받는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지명과 명칭을 고양으로 통일하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고양시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현장 조사를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지난 29일 마감했고, 온라인 설문조사도 지난 5일 종료했다. 시는 고양시 39개 주민센터에 협조요청을 해 이달 24일까지 주민 의견을 추가적으로 취합한 뒤 6월에 있을 상반기 지명위원회에서 호수공원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