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두툼한 선거 공보 우편물이 배송됐다. 봉투를 뜯자 투표안내문, 후보자 정보와 공약을 담은 전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행동수칙 등이 와르르 쏟아졌다.

부동산부에 몸담은 무주택 유권자답게 후보자별로 주거 정책을 먼저 훑어봤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나오는 건 한숨 뿐이었다. 한 후보는 "○○아파트, □□ 아파트 재건축을 촉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청년과는 별 상관이 없는 공약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역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지역구 후보라 그러려니 하고 정당별로 내건 10대 공약도 뒤져봤다. 한숨이 돌림노래처럼 이어지긴 매 한가지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주거 정책을 네 번째에 올려뒀다. 청년·신혼부부용 주택을 수도권 신도시에 5만가구, 지역 거점도시의 구도심 재생사업지에 4만가구 공급하겠다고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수익공유형 대출 상품을 마련해 주택 구입자금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정책을 되새김질하는 수준인데다 현 제도의 사각지대에는 손을 놓은 내용이다. ‘혼인한 지 7년 이내인 신혼부부와 예비신혼부부, 만 6세 이하 자녀를 둔 혼인가구이면서 가구 합산소득이 연 6000만~7000만원 이하’여야 신혼부부로서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혼인한 지 10년이 넘은 무자녀 가구나 초등학생 이상인 자녀를 둔 경우, 상당수 맞벌이 부부가 배제됐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번에도 기대는 접어야 할 듯하다.

주거 정책을 중요도 5위에 둔 미래통합당의 기조는 ‘부동산시장 자유화’다. 시세 9억원인 고가주택의 기준을 공시지가 12억원 이상으로 올리고, 상환능력이 검증되면 서울 기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60%로 높이겠다고 한다. 신도시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3기 신도시 조성계획은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거 복지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부동산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공시지가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아닌 토지에 대한 것이고, 상환능력에 따라 대출한도를 늘려준다면 LTV가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야 한다는 점 등이 문제다. 5개 신도시 예정지 중 4곳이 지구 지정을 마치고 이중 3곳은 지구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인데, 이를 완전히 뒤엎겠다는 주장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럼 규모가 좀 작은 정당에서는 쓸만한 정책을 내놨을까 마지막 기대를 걸어봤다. 국민의당은 10대 정책 순위를 정치·사회·경제·교육 개혁 등 현 정부의 기조를 전면 수정하는 방향으로 채웠다. 주거 정책은 복지 개혁 부문의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겨우 담겼다. 장기공공임대주택 200만가구를 주변 시세의 ‘반의 반값’에 공급한다는 정의당의 공약은 쓴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제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런 공약은 희망고문 대상도 못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일말의 책임은 그동안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했던 청년층에게도 있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노령연금 등 50대 이상을 위한 정책은 그들이 활발한 투표를 통해 얻어낸 것들이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청년층 주거 대책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게 만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청년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자, 남북전쟁을 직접 경험한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선거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투표용지(ballot)는 총알(bullet)보다 강하다." 당장 내일인 10일부터 이틀 동안 사전투표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