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말 발행 6000억원 규모 ABS, 5분의 1도 안 팔려 '애물단지'
영구채 차환 발행 못하면 연 10% 넘는 고금리 부채 돌변
현금성 자산 8200억원 중 5100억원은 ABS·채권 담보로 사용제한

대한항공(003490)이 지난달 30일 발행한 6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이 금융투자업계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 ABS는 대한항공의 미래 항공권 판매 수익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것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급락한 데다 대한항공의 유동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기피대상이 된 것이다. 항공업계는 대한항공이 지난 몇 년 간 높은 부채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써왔던 다양한 금융기법이 유동성 경색 국면에서 독(毒)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자사 항공권 판매 수익을 기초로 한 ABS를 6000억원어치 발행했다. 이를 산업은행·한국투자증권 등 15개 증권사가 인수했는데,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있다. 정확히 집계되고 있진 않지만, 첫 날 500억원대가 판매된 것이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다수의 증권사에서 인수자를 한 사람도 찾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3월 말 미래 매출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ABS(자산담보부증권) 6000억원 어치를 발행했다. 그런데 이 ABS를 매입하겠다는 투자자가 별로 없어 증권사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대한항공 발권 창구.

이전까지만 해도 항공사 미래 수익을 담보로 한 ABS는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한항공이 유동성 위기를 겪어도 매출 자체는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향후 매출이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ABS도 투자자가 뚝 끊겼다.

이 ABS는 유동성 위기에 올리고 있는 대한항공의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됐다. 지금까지 발행된 대한항공의 매출 기반 ABS 중 가장 대규모다. 이전과 달리 대한항공이 판매하는 항공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대한항공은 국내, 미주, 홍콩·싱가포르 등 권역을 분명하게 정해 현금흐름이 분명하고 환 변동 위험에 대한 헤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ABS를 발행해왔다. 이번에는 아예 대한항공의 향후 몇 년간 현금흐름 자체를 담보로 발행했다. 그만큼 다급한 사정이 반영된 것이다.

◇2011년 부채비율 뛰자 늘린 ABS 발행

금융투자업계는 오히려 대한항공에 ABS발 유동성 위기가 올 가능성까지 염려한다. 지난 2018년 10월 향후 3년 간 미주 노선 판매 수익을 담보로 발행한 ABS를 샀던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원금상환을 요구하면서 대한항공이 2500억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칼제23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SPC)’라는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발행한 ABS는 미주 노선 항공편의 40% 이상이 취소되는 경우 투자자들이 즉각 환불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특약 조항이 있었다.

ABS는 갑작스런 수익 감소에 따른 위험을 일부분(트랑셰)에 몰아넣고, 나머지 ‘위험이 낮은’ 부분을 따로 떼어내 낮은 금리 판매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그런데 천재지변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안전하리라 간주됐던 부분까지 상환불능(디폴트)에 빠지면, 기존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환불’ 조항을 넣었던 것인데, 코로나19로 대한항공의 목을 조르는 형국이 되었다.

급기야 이 ABS에 신용을 공여해 환불 요구 권한이 있는 신한은행이 1주일 평균 74편 이상 운항할 때까지 조기상환 권한 행사를 유예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시기도 9월 30일 이후로 못박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2019년 말 현재 대한항공의 ABS 발행 잔액은 1조1000억원이다. 3월말 발행분까지 합치면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ABS를 자금 차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칼제O차자산유동화전문회사’를 기준으로 보면 2001~2010년 5차례에 불과했으나, 2011년 3차례, 2013년 2차례, 2014년 7차례로 늘어났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 결과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항공기 앞에 서 있다.

문제는 대한항공이 지난 몇 년간 ABS 이외에도 다양한 금융 기법을 활용해 부채를 늘려왔다는 것이다. ABS 발행을 늘릴 것 자체가 부채비율 증가와 그에 다른 신용등급 하락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2011년 IFRS(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고 고객 마일리지를 부채로 상계(上計)하면서 부채비율이 전년 510.6%에서 708.6%로 뛰었다.

◇영구채, 차환 발행 무산…올해 7300억원 갚아야

올해 대한항공의 유동성 확보 과정에서 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사항 중 하나는 2017~2018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영구채)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재무적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편으로 영구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난해 말 현재 대한항공이 발행한 영구채는 총 1조1100억원에 달한다. 그 가운데 7300억원을 올해 상환하거나, 새 영구채를 차환 발행해야한다.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은 재무제표 상에는 ‘부채’가 아니지만 실제론 부채로 인식되고 있다. 영구채는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고, 추가 만기 연장 조항이 있어 회계상 ‘사실상의 자본금 납입’으로 간주되는 자금 조달 방법이다. 일반적인 회사채보다 상환순위도 낮다.

영구채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높은 조달 금리다. 대한항공의 영구채는 2019년 9월 발행분이 연 4.6%이고, 2017년 6월 발행분은 연 6.875%에 달한다. 두 번째는 일정 기간 내에 원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금리가 뛰는 이른바 ‘스텝업(Step-up)’ 조항이다. 사실상 만기 5년 이하 회사채처럼 꼬박꼬박 상환해야 하는 이유다.

2017년 6월 발행한 3억달러(3600억원)어치는 유로화 스왑을 통해서 연 4.875% 금리다. 그런데 12월까지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 5% 금리에 가산금리 연 5.44%, 여기에 더해 미국 국채금리까지 더해진다. 사채(私債)를 방불캐하는 연 10%대 고금리를 피하려면 상환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6월 발행한 2100억원어치는 현재 금리가 연 5.1%인데, 오는 6월까지 상환하지 않을 경우 2.5%포인트(p)에 발행 시점과 올 6월 당시 국고채 금리의 차이를 가감한만큼 금리가 오른다. 2018년 6월(연 2.175%)과 3월(연 1.091%) 만기 3년 국고채 금리 차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원금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리가 연 5.1%에서 연 6.516%로 뛰는 것이다. 2018년 11월 발행한 영구채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한항공은 당초 해외 영구채 3억달러 어치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무산됐다. 일종의 차환(借換) 발행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대한항공이 3월 말 ABS를 대규모로 발행하고 나선 배경으로 영구채 발행 무산을 꼽는다.

문제는 현재 대한항공이 갚아야할 빚은 많은데, 추가 채권 발행이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채권의경우 올해 영구채 7300억원어치에다 회사채 7400억원어치를 갚아야 한다.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 장기 차입금은 8800억원 규모다.

◇쓸 수 있는 현금성 자산 3100억원 밖에 없어

대한항공은 지난해 가용 현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2019년 말 대한항공의 현금성 자산은 8200억원이다. 2018년 1조5000억원에 비해 6800억원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쓸 수 있는 것은 310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5100억원은 ABS 차입금에 따른 신탁계좌 유지, 변동금리부채권(FRN) 상환 담보, 화물터미널 임차보증금, 국제우편물 운송 계약 담보 등으로 묶여있다.

매출 채권은 상환이 6개월 이하 남은 게 6500억원, 6개월~1년 이하 100억원이있지만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이 마비되면서 매출이 뚝 끊긴 상황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871%(연결재무제표)인데, 영구채까지 포함하면 1488%로 늘어난다. 이 같이 늘어난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그동안 여러 기법을 이용해 빚을 ‘관리’하는 데 성공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쓰나미를 맞아 부채를 자력으로 유지하기 어려워 졌다는 게 항공업계와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