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순자금운용 64.2조…2012년 이후 최소
기업 자금조달 줄었지만 버는 돈 더 크게 감소해
정부 곳간도 텅텅, 세입 대비 지출 늘어난 영향

지난해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들이 버는 돈에서 빌린 돈을 차감한 규모가 8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의 설비투자 축소로 빌린 돈이 줄었음에도 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극심했던 탓이다. 정부 곳간도 대대적인 재정 확대에 대폭 쪼그라들면서 우리나라 전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7년 만에 최소 수준을 나타냈다. 내 집 마련 수요가 줄어든 가계만 여윳돈이 대폭 늘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19년중 자금순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활동 결과 발생한 국내 부문 순자금운용 규모는 64조2000억원으로, 2012년(56조8000억원) 이후 가장 적었다. 순자금운용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경제 주체의 여유자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달자금이 운용자금보다 많은 기업의 경우 순자금조달 규모로 파악한다.

경기도 안산 공장지대에 임대, 매매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순자금운용 규모가 줄어든 건 비금융법인기업(일반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미친 영향이 컸다. 일반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지난해 72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44조4000억원)에 비해서 28조5000억원 늘어난 규모로 2011년(74조6000억원) 이후 최대였다.

지난해에는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줄어 자금조달(183조8000억원)도 1년 전에 비해 5조원 가량 감소했다. 그럼에도 순자금조달 규모가 늘어난 건 자금운용(110조9000억원) 규모가 1년 새 33조5000억원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과의 무역갈등, 반도체 단가 하락 등으로 기업의 순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은 38조7000억원으로 전년(82조3000억원)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계의 여유자금은 대폭 늘었다.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91조8000억원으로 1년 전(52조7000억원)에 비해 39조1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강도높은 부동산 규제책으로 내집 마련 수요가 줄어들면서 자금조달(88조4000억원) 규모가 15조7000억원 감소했다. 자금운용(180조1000억원)은 23조4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복지지출과 더불어 신예대율 규제를 앞둔 은행들의 예금 확대에 영향을 받았다.

정부 곳간은 줄었다. 지난해 적극적인 재정확대에 순자금운용 규모가 38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55조원)에 비해 16조7000억원 감소한 것이다. 지분증권, 투자펀드 등의 운용규모 확대로 자금운용(89조5000억원)이 14조2000억원 늘었지만, 국채 발행이 대폭 증가해 자금조달(51조2000억원) 규모가 31조원이나 늘었다. 세입대비 지출이 늘면서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지난해 12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