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3월 25일 경기도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을 방문해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될 때 다시 한 번 힘을 내 벽을 넘자"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올해 들어 6번째 현장 경영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에도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와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2월 EUV(극자외선)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 3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연달아 찾았다.

지난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이재용 부회장.

올해 들어 이 부회장이 찾은 곳은 인공지능(AI)과 5세대 이동통신(5G), 자율주행, 마이크로 LED, 초미세공정 등 삼성전자 ‘미래 먹거리’ 연구 중심지다. 오너가 앞장서 연구개발(R&D)을 독려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R&D 가속화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실적 악화에도 R&D 투자액을 2018년보다 9.2% 늘렸다. 이에 따른 지난해 R&D 투자 총액은 20조1929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4차산업혁명의 뿌리인 AI에 R&D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에 서울R&D캠퍼스 삼성리서치를 찾았다. 삼성리서치는 2017년 11월 출범한 글로벌 AI 연구센터다. 삼성전자는 삼성리서치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인 AI 관련 선행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삼성전자 AI 연구센터는 한국, 미국, 영국, 캐나다, 러시아 등 5개국 7개소다.

세계적 석학 영입에도 열심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6월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세바스찬 승(H.Sebastian Seung·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와 다니엘 리(Daniel D.Lee) 코넬테크 교수를 영입했다. 2019년에는 위구연 하버드대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CT(정보통신기술) 전시회 CES 2020에서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능형 로봇 ‘볼리’.

마이크로소프트 케임브리지 연구소장을 역임한 앤드류 블레이크(Andrew Blake) 박사, AI 기반 감정인식 연구로 유명한 마야 팬틱(Maja Pantić)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교수, 드미트리 베트로프(Dmitry Vetrov) 러시아 고등경제대학(HSE) 교수, 빅토르 렘피츠키(Victor Lempitsky) 스콜테크(Skoltech) 교수 등도 삼성전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 선행 연구개발 인력을 2020년까지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AI 기술력을 지닌 스타트업 인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미국 실리콘 밸리 소재 AI 플랫폼 개발 기업 '비브 랩스'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자연어 기반 AI 플랫폼을 갖고 있다. 2017년 11월에는 대화형 AI 서비스 스타트업 '플런티'를 인수했다. 삼성전자의 국내 첫 AI 스타트업 인수 사례다. 삼성전자는 스타트업 기술을 바탕으로 AI 비서 빅스비(Bixby)를 개선하고, 올해 내 모든 스마트기기에 AI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AI와 하드웨어 기술력을 결합한 로봇 개발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CES 2019에선 ‘삼성봇’과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을 공개했다. 이어 올해 CES 2020에선 개인 맞춤형 케어 기능을 강화한 지능형 로봇 ‘볼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볼리는 가정 내 스마트기기와 연결해 다양한 홈케어를 수행할 수 있고,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 활용이 가능하다.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EUV 라인 전경.

4차산업혁명은 고성능 반도체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인 메모리 분야를 넘어서, 시스템 반도체로 보폭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자신감은 극자외선(EUV)을 활용한 초미세공정에서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미 시스템 반도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9년 4월엔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nm) 시스템 반도체를 출하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턴 6나노 양산을 시작했다. 지난 1월엔 3나노 공정 기술을 연구실 단위에서 세계 최초 개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건설 중인 화성캠퍼스 EUV 전용 라인이 올해 본격 가동된다"며 "초미세공정을 발판으로 4차산업혁명의 ‘쌀’인 고성능·저전력·고집적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