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 달 가까이 개점 휴업한 법원 경매가 재개되자 마자 서울 아파트의 인기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서울 고가 아파트 중에서는 감정가의 60%까지 떨어진 가격에도 유찰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7일 법원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4월 들어 서울 지역 법원에서 첫 아파트 경매가 진행된 지난 1일 아파트 5건이 모두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종로구 ‘엘리시아’ 전용면적 236㎡은 19억원이던 최저입찰가격이 잇단 유찰로 이번 달 경매에서 12억원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 오는 5월에는 감정가의 절반인 9억7000만원대에 경매에 부쳐진다.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전용면적 140㎡형은 감정가의 80%인 33억5000만원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해당 면적형은 매매 시세가 45억원을 호가하는 물건이다. 두 번 유찰된 탓에 오는 5월에는 감정가의 64%인 26억8000만원대에 입찰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

25억40000만원에 경매에 나온 서초구 ‘프레스턴’ 전용면적 244㎡짜리도 유찰됐다. 이미 한 차례 유찰된 전용면적 193㎡인 강남구 청담동 ‘마크힐스2단지’는 일정이 변경됐다.

코로나 사태로 법원 일정이 상당수 미뤄진 지난 3월에도 경매시장 분위기는 냉랭했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이 12개월 만에 가장 낮은 83.3%에 그쳤다. 특히 단 8건만 경매에 부쳐졌고, 이중 1건만 낙찰될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한 상황이다.

서울에서 한 달에 아파트 경매 건수가 10건도 안 된 것은 지지옥션이 집계를 시작한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평균 응찰자 수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유행한 2002년 말~2003년 상반기, 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2015년 5~12월 사이에 매각된 아파트 경매에는 건당 평균 4~8명이 응찰했다.

유일하게 낙찰된 물건은 연예인과 재벌 총수들이 거주하는 고급주택가로 유명한 용산구 유엔빌리지의 ‘힐탑트레져’ 전용면적 209㎡형이었다. 1차례 유찰돼 최저입찰가격이 감정가의 80%로 낮아졌고, 23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해당 면적형은 현재 매매 시세가 28억~35억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올 1~2월만 해도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 아파트 경매물건의 낙찰가율이 99~100%였던 상황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급반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난해 발표된 12·16 대책과 코로나 사태가 맞물리면서 자금력이 탄탄한 실수요자가 아니면 굳이 경매시장에서 주택을 구입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시세 9억원 초과 주택은 담보인정비율(LTV)이 절반으로 깎이고, 15억원 초과 주택은 아예 대출이 막히다보니 고가 경매 물건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경매 입찰자들은 대개 낙찰받은 후 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를 계획을 세우는데,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가 주택 경매시장에는 현금을 가진 실수요자만 남은 상황"이라면서 "특히 앞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보는 수요자들이 많아지면서 경매시장이 더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