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외면받은 서울시 청년주택
월세 30만원인데 청소비·가구 렌트비가 30만원
"청년이 봉이냐" 논란에 모든 추가비용 철회

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숭인동 ‘역세권 청년주택’ 내부에선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부 4명이 200여 세대 모든 호실에 있던 침대와 탁자 등 가구를 빼낸 뒤, 지하 1층 연회장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미 연회장에는 검은색 침대 매트리스 수백 개가 일렬로 쌓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인부는 "당장 다음달부터 청년들이 입주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모든 호실에 있던 가구를 빼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숭인동 청년주택은 지난 2018년 말 서울시에서 시행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 따라 관광호텔을 청년주택으로 리모델링한 ‘1호 사례’였다. 지하 3층, 지상 18층 238세대 규모의 이 청년주택은 인근 시세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도보 10분 거리에 지하철 1·6호선 동묘역과 신설동역 등 역세권에 위치해 있다. 이 장점 덕분에 지난해 진행된 민간임대 사업 청약 경쟁률은 10대 1을 넘어서기도 했다.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마련된 역세권 청년주택 모습. 기존 호텔에서 사용하던 가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서울주택도시공사에 따르면, 입주 대상 200여 세대 중 90%에 이르는 180여 세대가 최근 입주를 포기했다. 1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주 예정자들이 입주를 생각을 바꾼 이유는 뭘까. 원인은 ‘호텔식 서비스’ 때문이었다.

청약에 당첨된 입주 청년들이 계약을 위해 방을 살펴보니, 방에는 기존 호텔에서 쓰던 가구와 침구가 그대로 있었고,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문제는 임대 업체 측에서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32만~38만원의 월 임대료 외에 추가로 가구 대여비와 카페트 청소비 등 최대 30만원의 ‘옵션비’를 요구한 점이었다.

입주 예정자였던 A씨에 따르면 임대료나 임대보증금은 변화가 없었지만, 매달 기본 관리비에 △청소비 △가구 대여료 △인터넷·헬스장 이용료 등이 추가로 납부해야 했다. 여기에 조식과 석식도 의무적으로 이용하도록 안내받았다고 주장했다. 모든 비용을 합치면 대략 3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임대료까지 합치면 청년이 부담해야 할 실거주 비용은 매월 70만원에 육박하게 된다.

역세권 건물에서의 생활을 기대했던 청년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지난달 28일에 직접 방을 보러 갔는데 화만 났다"면서 "서울주택도시공사 믿고 (청년주택) 신청해 오래 기다려왔는데 결국 돌아온 건 분노와 서러움뿐"이라고 토로했다. 공공주택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과연 이게 청년들을 위한 주택이냐" "월세와 대출이자 내기도 힘겨운데 옵션비까지 요구하면 어떡하느냐"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논란이 일자, 임대 업체는 이달 초 모든 옵션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업체 관계자는 "처음 의도 자체는 청년들이 가구나 침구 등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끔 한 것"이라며 "추가 비용에 대해 청년들의 거부감이 큰 것 같아, 월 임대료 외에 아무것도 안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역시 "논란이 됐던 추가비용에 대해서는 모두 철회됐고, 가구의 경우에만 필요한 입주자에게 별도의 비용을 받고 대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대 업체는 이날부터 오는 8일까지 계약을 포기한 입주자들에게 추가비용 철회를 안내하고, 재입주 의사를 물어볼 계획이다.

역세권 청년주택이 청년에게 외면받은 사례는 숭인동이 처음이 아니다. 입주자 모집 평균 경쟁률 7대 1을 기록했던 충정로 1호 역세권 청년주택인 ‘충정로 어바니엘’도 민간임대 450가구 중 다수가 미계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계약 초기 전제자금대출이 불가능했던 부분이 미계약에 영향을 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규정상 소유주와 임대인이 다르면 4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임대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청년 입주 대상자들에겐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면 청년주택도 사실상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임대 운영을 맡은 롯데자산개발은 지난달 당첨 세대 중 미계약된 세대에 대해 일반 시민 모집에 나섰다. 서울시도 뒤늦게 문제점을 인지하고, 임대 업체와 협의해 보증금의 절반을 무이자로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