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산 원유, 지난달 말 배럴 당 -19센트로 떨어지기도
수요 감소에 증산 경쟁으로 재고 비용 급증하며 벌어진 현상

조만간 전세계 원유 저장용량이 한계에 달하며 국제유가 가치가 ‘마이너스(-) 시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정유회사가 석유를 판매하려면, 고객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석유 소비가 줄어든 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이라크 등이 증산 경쟁을 벌이면서 재고 비용이 급증으로 벌어진 기현상이다.

우한 코로나로 인한 수요 위축, 석유 생산국의 증산 경쟁에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 와이오밍산 원유는 지난달 말 배럴 당 -19센트로 떨어지기도 했다. 수요 감소로 원유가 팔리지 않고 저장고에 쌓이면서 관리 부담이 늘면서 돈을 주고서라도 소비자에게 원유를 가져가라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6년 미국 노스다코타산 중질유가 배럴 당 -0.5달러로 책정된 바 있다. 유황을 다량 함유한 극도로 저품질의 원유인 데다, 이를 실어나를 송유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15년 캐나다 앨버타에서 프로판가스가 3개월간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된 적도 있다.

1일(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미국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원유 저장용량이 올해 중반쯤 한계에 이를 것이며 이런 상황이 유가 하락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웨덴 금융사 SEB그룹의 비얀 쉴드롭 상품 전략가는 "이미 많은 정유사들이 원유를 가공할 때마다 손해를 보거나 생산한 원유를 보관할 장소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들이 받는 유가는 조만간 제로 수준 혹은 마이너스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는 올해 1분기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66% 급락했고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도 65% 떨어졌다.

전세계적인 수요 정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 경쟁이 계속되며 일부 원유업체는 소비자에게 돈을 얹어주고 파는 상황이 됐다. 미국 에너지 거래기업인 머큐리아는 와이오밍주에서 생산하는 아스팔트용 저등급 원유(Wyoming Asphalt Sour)에 배럴당 마이너스19센트 라는 가격을 매겼다.

한 자릿수에 거래되는 원유도 늘고 있다. 캐나다 대형 석유수송업체의 기준가격인 캐나다 웨스턴 셀렉트(CWS)는 지난달 27일 가격이 배럴당 5달러6센트로 떨어졌고 오클라호마산 원유는 5달러75센트, 네브라스카 중질유는 8달러에 거래 됐다.

전문가들은 브렌트유보다 저장이 어려운 WTI의 가격이 더 빨리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며 심지어 마이너스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와 달리 WTI는 생산지가 육지로 둘러싸여 있고 물에서 500마일 떨어져 있어 저장시설과 접근성이 떨어진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한 코로나는 내륙산 원유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보내고 있다"며 "유정을 폐쇄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생산자들이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원유를 처분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미 GDP 10% 차지하는 셰일업계 부채만 107조원

미국 셰일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셰일 기업 ‘화이팅(Whiting Petroleum)’이 이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셰일오일 채굴 원가는 기술 발달로 현재 32~5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30달러 미만의 국제유가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이들 셰일 에너지 업체가 갚아야 할 부채만 860억 달러(107조원)로 추산된다.

셰일가스 산업의 충격은 미 경제를 흔든다. 2010년 전까지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비중이 미미했으나 작년 기준 10%로 확대 됐다. 이들은 빚을 내 기술 투자를 확대하며 생산 효율을 높였는데 회사채 시장의 리스크를 키우는 결과가 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이후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가운데 투기등급(신용등급 BB 이하) 비중이 50%를 초과했다. 우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기업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회사채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이자율이 급등 했다.

위험 회피 분위기가 회사채 전체로 옮겨 붙으면서 투기등급 바로 윗 등급인 투자등급(신용등급 BBB) 채권 금리도 미국 국채 금리와의 격차가 3%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정상적인 기업 마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들 회사채에 투자한 은행이나 펀드의 손실로 이어질 경우 금융시장 전반으로 리스크가 옮겨 붙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연쇄 전화회담을 가진 데 이어 오는 3일 엑손모빌, 셰브런 등 주요 석유회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석유업계 내에서도 정부 개입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지난달 미 의회를 통과한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우한 코로나 경제대책에서도 에너지 기업 관련 내용이 빠지는 등 현 시점에서 미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기업을 도울 방법은 제한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