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의 자금난으로 두산그룹의 4세대 경영체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뚜렷한 정상화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중공업은 매출의 60~70%를 차지하는 석탄 화력발전 시장이 침체하는 가운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프로젝트 수주도 급감하면서 실적이 악화했다. 두산중공업의 최근 3년(2017~2019년)간 별도기준 영업이익은 2263억원에서 1846억원, 877억으로 대폭 줄었다. 이 가운데 차입금 4조9000억원 중 4조원이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와 부담이 큰 편이다.

◇자금난에 긴급 수혈받은 두산重… 자구책 찾을까

두산중공업은 자금난에 정부로부터 긴급수혈까지 받고 있다. 수출입은행·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지난달 27일 실적 악화를 겪던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지원하면서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두산중공업의 경영정상화가 안 된다면 대주주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이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100% 자회사 두산건설을 매각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두산건설 본사.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두산중공업이 자회사 매각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두산건설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을 매각하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건설시장 자체가 위축돼있어 ‘보여주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개발 등 신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두산중공업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대표는 지난달 3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맞춰 풍력기술에 대한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 속도가 예상만큼 빠르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간지주사인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두산 연결 실적과 두산중공업 별도 실적을 비교해볼 때, 그룹 내 중공업의 매출 비중은 약 20%(3조7100억원), 영업이익 비중은 약 7%(877억원)로 파악된다. 중간지주사라 자회사 이익도 그룹에 전달하기 어렵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24일 두산중공업 무보증사채 신용등급(BBB)을 하향 검토 대상에 등록하면서 "두산중공업의 재무 리스크가 지주회사인 두산뿐 아니라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나 두산밥캣으로 전이되는 경우, 이들 계열사의 신용도도 저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원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도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의 이익이 두산중공업에 귀속되지만 두산중공업 자체의 재무 부담 때문에 자금이 두산으로 흘러가지 못한다는 점이 두산 지배구조의 약점"이라고 말했다.

◇ 두산 4세 경영 시험대… 리더십 보여줄까

이 때문에 두산중공업발(發) 위기는 두산그룹 4세대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산그룹은 2016년 3월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이 취임하면서 국내 기업 최초로 4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박정원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중공업 대표, 박혜원 오리콤 부회장도 경영일선에 있다.

두산그룹 가계도.

4세대인 ‘원(原)’자 돌림 사촌들도 경영권을 잡고 있다. 박용성 전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박석원 두산 부사장 등은 경영권을 쥐고 있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박형원 두산밥캣 부사장·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아들인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도 경영에 나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두산의 지배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촌경영으로 오너 권력이 책임이 분산되면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산그룹 측은 "현재 자구안 대책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나 부실이 닥칠 경우 책임이 분산될 수 있는 경영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며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다른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