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인수 첫 단계인 7일 유상증자 대금부터 '무기한 연기'
운항률 7.6% 불과한데, 리스 등 비용 지출은 그대로
HDC "차질 없이 인수"… 항공업계는 "인수 좌초 가능성 커"

HDC현대산업개발(294870)(HDC)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항공업황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HDC가 2조3000억원을 치르고 사는 게 타당한 것인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과 HDC 간의 재협상이 불가피해졌다. HDC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하반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높다.

1일 금융권과 항공업계에 따르면 당초 HDC가 7일 아시아나항공(020560)에 1조4700억원을 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키로 했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아시아나항공은 7일이었던 자금납입일을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로 지난달 27일 정정 공시했다.

아시아나항공 본사 사무실.

여기서 핵심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이라는 문구다. HDC와 산업은행이 자금 납입 및 매각 일정을 놓고 적잖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당초 계획은 HDC가 아시아나에 1조4700억원을 유상증자하면, 아시아나항공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대상 차입금 상환에 1조1700억원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산은의 지원 규모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서도 인수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표면상 매각일정 연기 사유는 코로나 사태로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가 전제돼야 이후 일정을 진행할 수 있어 불가피하게 양측 합의 하에 일정을 연기하게 됐다"며 "일정 변경에 따라 1, 2차로 나눴던 HDC의 유상증자 납입 계획을 변경해 유증 납입과 구주 납입을 같은 날 동시에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HDC도 기업결합 심사가 완료되면 산은의 자금 지원 규모와 시기에 따라 유상증자 날짜를 확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심사가 언제 재개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를 고려할 때 HDC가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은 업계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작년 영업손실은 3700억원, 당기순손실은 6700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2018년 649.3%에서 작년 1386.7%로 2배 넘게 급증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HDC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300%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코로사 사태로 상황이 악화하면서 이 또한 미지수가 됐다"며 "흑자 전환은 2021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2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HDC는 정상화를 위한 자금 투입 등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작년 11월 1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나항공의 운항률은 현재 7.6%까지 떨어졌다. 매출은 급감했으나 인건비와 리스비 등은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은 다음달부터 무급 휴직 비중을 늘려 직원 절반만 가용하고, 대표와 임원은 월급을 60~100%까지 반납하는 등의 자구책을 내놨지만, 리스비 지출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리스비용으로 약 5100억원을 지출했다. 매달 리스비로만 400억원 가량이 나가는 셈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난 HDC는 주식가치 대비 3배 이상의 값을 치르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제시한 금액은 2조5000억원이지만, 30일 기준 시가총액은 7400억원에 불과하다.

인수가 무산되면 HDC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액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 2500억원을 손해 보게 된다. 일각에서는 위약금을 내더라도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인수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평이 나오지만, HDC 경영진은 인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도 권순호 HDC 대표는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