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1577권(24만여쪽)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노태우 정부는 88서울올림픽 개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고, 경제난에 봉착한 동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경제협력을 위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차관 제공이 수교의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점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과 헝가리가 1988년 8월 12일 서명한 '합의 의사록'에 따르면, 6항에 '양측은 상주대표부가 설치된 후에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에 의한 쌍무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7항에 '양측은 대한민국이 8항 (a)호 (ⅴ)에 규정된 경제협력계획의 약속을 50% 이행했을 때에 6항에 언급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합의했다'고 적시돼있다.

8항은 경협에 대한 사항으로, (a)호에는 '한국 정부는 헝가리 측에게 미화 6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아래의 경제협력을 제공한다'고 적혀있고 다섯 가지 지원 방안 중 맨 마지막인 (ⅴ)는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은행차관'이다. 즉, '한국이 헝가리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6억5000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은행차관의 절반인 1억2500만 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된 것이다. 이 '합의 의사록'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 실제 1988년 12월 14일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계약을 체결했다. 양국은 이듬해 2월 1일 수교했다.

정부는 협상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헝가리의 경협 제공 요구에 응하면 '다른 국가와의 수교 및 경협 확대 시 동종 요구 가능성'이라고 우려했는데, 실제 한국은 그해 11월 폴란드와 수교하면서도 4억5000만 달러의 경협을 제공해야 했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는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임시 휴관 중이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