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위기 극복 의지를 강조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고,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미래를 준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경제가 전례없는 충격에 빠진 가운데 재계 총수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주문하고 나섰다. 현재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10~20년 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성장 전략으로 단기 충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비상경영에 돌입한 기업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차세대 기술투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일 구미사업장에서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재계 총수들도 미래사업 준비에 발 벗고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은 올해 들어 6차례 주요 사업장을 방문해 미래 사업 전략을 검토하는 등 ‘현장 경영’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달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찾아 "예상치 못한 변수로 힘들겠지만 잠시도 멈추면 안된다"며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가자"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연내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생산을 중단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키우고 있는 QD(퀀텀닷) 디스플레이 사업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은 이번주부터 주요 사업부문의 경영현황을 점검하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 조만간 국내 주요 사업장을 돌면서 현장 경영에도 나설 계획이다. 그는 2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와 미래 성장동력의 발굴·육성을 통해 위기 이후의 성장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올해를 미래차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원년으로 삼고 2025년까지 5년간 매년 20조원씩 투자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현대차(005380)는 미래차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본부 신입·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채용 분야는 수소연료전지, 전동화·자율주행 기술 등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24일 화상으로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달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참여하는 ‘비상 경영 회의’를 소집하고 코로나19의 경제적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잘 버텨보자’는 식의 태도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씨줄과 날줄로 안전망을 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저마다 사업 고도화 전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럽 국가간 국경이 폐쇄되는 긴급 상황에서도 유럽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을 추진하는 등 성장 산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도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인조흑연계 음극재 국산화에 속도를 낸다. 회사는 2177억원을 투자해 연산 1만6000톤 규모의 인조흑연계 음극재 생산공장을 포항시에 신설한다.

SK종합화학은 고부가 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로의 전환을 위해 범용 화학제품 생산 비중을 줄인다. 이를 위해 48년 만에 울산 나프타분해공정인 NCC공정과 합성고무제조공정인 EPDM공정을 가동 중단하기로 했다. OCI(456040)는 대규모 적자를 내는 태양광 원재료 폴리실리콘 사업의 국내 생산을 접고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한화토탈도 오는 2021년까지 고부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공장을 각각 연간 40만t씩 증설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미래 사업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