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군, T-50A 콕 집어 군수업체에 '8대 물량 확보' 지시
조종사 양성 과정 개발용 도입…추가 물량 확보 기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지난 2018년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미국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재기의 불씨를 되살렸다. 미 공군이 KAI가 미 공군에 제안한 T-50A 8대를 임차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 공군이 추진하는 차기 조종사 양성 과정 개발용 기체인데, 항공업계는 향후 추가 발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4일 미 항공전문지 애비에이션위크에 따르면 미 공군은 리스업체인 힐우드항공과 KAI의 T-50A 4~8대를 장기 임차하는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힐우드항공이 KAI로부터 T-50A를 구매하면, 이를 미 공군이 임차하는 방식이다. 미 공군이 직접 구매하기 어려우니 민항기 업체들이 쓰는 장기 리스 계약 형태로 쓰겠다는 것이다.

◇"미국 업체와 협의 진행 중"

국내 항공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 측이 원하는 물량은 8대에 가깝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국 업체와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고 전했다. 1대당 공급 가격은 200억~25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성사가 될 경우 최대 2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이다.

미국에서 T-50A가 시험 비행을 마치고 착륙해 있다. KAI는 기술 도입선인 미국 록히드마틴과 함께 미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 사업 입찰에 나섰었다.

미 공군은 지난 2018년 차기 고등훈련기(T-X) 사업 계약자로 미 보잉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제안한 ‘T-7A 레드호크’를 선정했다. 이 사업은 T-38 훈련기의 후계 기종 350대 가량을 2024년부터 납품하는 것이다. T-38은 1959년 양산이 시작돼 1972년 생산이 끝난 터라 기체 노후화 등의 문제가 심각했다.

미 공군이 T-50A를 도입키로 한 것은, 차기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으로 추진하는 RFX 사업에 필요한 제트훈련기가 필요해서다. 미 공군은 만성적인 조종사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프로젝트리포지(Project Reforge·RFX)라는 명칭의 사업을 필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위해서는 현대화된 제트 훈련기가 필요하다. 노후화된 T-38가 아닌 다른 기체가 필요한 셈이다.

또 미 공군은 B-2 폭격기 등 비행 횟수에 제한이 있는 고급 기체 조종사용 유지 비행을 위해 제트훈련기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아직 개발이 안된 T-7A 이외에 이미 검증된 훈련용 제트기가 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T-50A의 원형인 훈련기 T-50과 경공격기 FA-50은 공군이 몇 해전부터 실전 배치한 기체"라며 "훈련기를 바로 투입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미 공군 측에서도 이런 점을 우선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공군은 애초에 사업 참가 요건에 레이더 장착을 내걸었다. T-X 사업에 입찰한 또다른 업체인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의 M-346을 사실상 제외하는 조치다. T-50A를 콕 집어 도입한 셈이다.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FA-50가 이륙하고 있다.

◇추가 도입 가능성 커…T-50A 사업 청신호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미 공군의 추가 도입 가능성도 점친다. 먼저 미 공군의 RFX 사업이 초기 단계여서 도입 대수가 적지만, 향후 본격적인 사업이 진행되면 추가 도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 공군의 차기훈련기 사업이 가상적기 등 T-38 정도급의 항공기가 투입되어 온 분야까지 염두해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비에이션위크 등에 따르면 미 공군은 훈련 등에 사용되는 가상 적기 가운데 다수를 차기훈련기 양산 모델로 대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T-7A의 첫 양산기가 나오는 것은 2024년이다. T-38 등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번에 미 공군이 일부 써보기로 한 T-50A를 대체 기종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T-50A는 록히드마틴의 베스트셀러 전투기 F-16을 원형으로 하고 있어 미군에서도 운용이 편리하다.

가능성은 낮지만, 보잉의 T-7A 개발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잉은 최근 미국 정부에 600억달러(약 77조5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신청하는 등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험 기체가 저고도 고속 비행까지 성공한 상황이지만, 훈련기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는 데 거쳐야할 난관은 많다. 당초 예상 사업비의 77% 수준으로 낮은 가격에 입찰에 성공한 터라, 향후 양산 비용이 예상보다 뛸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훈련기 이외의 용도에 T-50A가 비집고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KAI는 향후 상황 진전에 상관없이 미 공군의 기체 도입 추진을 반긴다. 미 공군이 자사 전투기를 사용하면 해외 수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 공군기는 서방권 군용 항공기의 표준이기 때문에, 미 공군 사용 기종은 다른 나라에서 도입해 운용하기 편리하다. 또 미 공군이 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다 주는 일종의 ‘품질 보증’ 효과도 상당하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이 성사되면 국산 전투기가 미국에서 사용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동남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KAI의 FA-50 수출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