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4월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 직원이던 A씨는 당시 하루 일과에 대해 "업무 시간에는 회사채 보유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제발 만나달라'고 사정하고, 퇴근 후에는 채권자들을 만나 '상환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전부"라고 회상했다. 한진해운의 전체 차입금 5조6000억원 중 1조5000억원 수준이던 회사채는 회사를 무너뜨린 방아쇠가 됐다. 채권자들의 주소를 일일이 파악해 찾아가 회사채 만기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A씨를 비롯한 한진해운 직원 대부분의 마지막 일이 됐다. 한진해운은 결국 채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해 2017년 2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회사채는 기업들이 시설투자와 회사 경영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회사채를 발행하면 기업은 채권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이자를 지급하고, 약속한 기일(만기)에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금융사를 통한 대출에 비해 장기간 돈을 빌릴 수 있고, 주식 발행처럼 경영권을 위협받을 염려도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호하는 자금 조달 수단이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힘든 비우량 기업들이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해운업처럼 장기간 불황이 지속되거나 무리하게 돈을 끌어와 영업 확장을 하다보면 회사채 규모가 기업이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불어난다. 외환 위기 이후 해체된 대우그룹이 대표적 사례다. 대우는 1990년대 후반 돈줄이 막히자 회사채를 발행해 돌려막기식으로 자금 조달에 나섰다가 결국 자금난이 심화돼 대규모 부도를 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전직 금융 관료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기업들의 부채가 주로 은행 빚이었기 때문에 은행을 통한 만기 연장과 채무 상환 유예 등의 대응이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개인들도 회사채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채권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사례처럼 일분일초가 급한 한계기업이 채권자들을 확인하고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다 써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