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금리를 0.5%포인트 낮추면서 사상 초유의 기준 금리 0%대 시대가 열렸다. 흔히 '금리 인하=부동산 값 상승'이 공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저(低)금리로 대출 이자 부담이 줄고, 늘어난 시중 유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좀 다르다. 정부가 고가(高價) 주택 대출 규제를 강화했고,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돌발 변수로 실물 경기가 휘청이고 있다. 실물 경기 하락이 오래가면 집값 역시 '홀로 상승'을 이어가긴 어렵다. 하지만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면 경기가 나쁠 때 안전 자산인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수도 있다. 향후 부동산 시장은 어떤 쪽으로 움직일까? 17일 본지(本紙)가 부동산 전문가 7명에게 물었다. 이들은 대체로 "금리 인하에도 단기적으로 부동산 값이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1년 이상 중·장기 전망은 달랐다.

◇'규제+코로나' 공포가 강해

전문가 7명 모두 "금리 인하에도 단기적으로 부동산 값이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규제로 9억원 넘는 주택은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금리가 내려도 대출받아 집을 사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한 코로나 때문에 주택 매수자들이 집을 보러 다니기를 꺼리는 데다 국내외 증시, 국제 유가 등 거시 경제지표가 일제히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즉 금리 인하에 따른 유동성 확대 효과보다 규제와 우한 코로나에 따른 공포 심리가 지금 시장에선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의미다.

그래픽=양인성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코로나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경제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금리 인하를 '집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코로나 때문에 실물 경기가 너무 나빠져서 강남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인기 지역 집값은 적어도 1년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은 급격한 시장 위축을 방어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며 "구매자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시장 전반적으로 보합세를 유지하거나, 일부 지역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진정되면 다시 오를 수도"

그렇다고 집값의 급격한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도 없었다. 일부 전문가는 코로나 사태 진정 후에는 자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면서 집값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경기 침체가 안전 자산 선호도를 높이고, 0%대 금리가 만들어낸 풍부한 유동성이 더해져 부동산 시장부터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리가 낮아지는 만큼 부동산 보유자들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어 팔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외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점도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시중에 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일부 지역으로 자금이 몰려 집값이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덜한 9억원 이하 중저가나 비(非)규제 지역 아파트들이 가장 먼저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금을 들고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주식보다는 안전 자산인 부동산 시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중저가 시장과 청약 시장 중심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보통 중저가와 고가 아파트의 가격 격차가 줄어들면, 다시 고가 아파트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중저가 아파트의 상승세는 결국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경기도나 서울 외곽 아파트 값이 뛰면 마포나 강남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싸 보이면서 뒤따라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