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상표 브로커'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인기 있는 상표 브랜드를 중국 당국에 미리 등록한 후, 해당 브랜드가 중국에 진출할 때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걸며 합의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지심특허법률사무소의 유성원(43·사진) 대표변리사는 한국 기업을 대리해 중국에서 상표권 소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송을 맡은 기업이 169곳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지난 13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유 변리사는 "상표 브로커가 한국 브랜드를 베껴 처음 등록할 때 드는 비용은 30만원인데, 해당 기업이 중국 진출할 때 상표권 침해로 소송 걸고 합의 명목으로 요구하는 금액은 10억원"이라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중국어 표기만 추가할 뿐 국내 브랜드의 한글 표기와 상징 마크까지 그대로 베껴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2018년 한국 기업이 중국 상표 브로커에 의해 무단 선점된 브랜드는 2367개, 이들로부터 브랜드를 사오며 합의 명목으로 준 돈은 249억원에 이른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상표권 소송을 해도 승소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적당한 가격에 상표권을 사오는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2017년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8곳이 모여 중국 상표 브로커 2곳을 상대로 공동 무효 심판을 제기해 이듬해 승소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유 변리사는 "중국에서도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문제가 심각해지자, 중국 법원이 해외 상표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 변리사는 중국에서 상표권 침해를 당한 경우,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소송 과정에서 '상표 브로커'가 악의적인 목적으로 여러 상표를 등록했다는 점을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변리사는 "최근엔 상표 브로커들이 베낀 상표를 이용해 실제 사업을 하거나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등 꼼수를 쓰기도 한다"며 "이럴 때는 브로커 자회사의 지배구조나 소셜미디어 활동, 인터넷쇼핑몰 판매 실적을 심층 분석하는 식으로 소송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