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매입 등 양적완화는 "시기상조" 지배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1%P(포인트) 내린데 이어, 한국은행도 16일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는 ‘빅컷(big cut·큰 폭의 금리 인하)’을 단행했다. 우한 코로나 전염병(코로나 19)이 글로벌 경기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공조에 한은이 동참한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금리인하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실효 하한이 0%대로 내려갔다고 지적한다. 실효하한 금리란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최대한 낮출수 있는 수준의 금리를 의미한다. 실효하한 보다 낮은 금리는 외국인 자본의 이탈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한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로 제로금리를 시행하는만큼, 한은도 보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통한 경기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0%대 기준금리가 실질적인 경기 완충 효과를 발휘하려면 시중에 자금이 충분히 돌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은이 미시적인 시장안정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韓 실효하한 금리는 0%대"

한은은 16일 오후 4시 30분 임시 금융통화원회의를 열고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0.75%로 0.5%P 인하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어서 기준금리를 0.5%P 이상 낮춘 것은 2009년 이후 11년만이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1%P 인하에 자극받은 한은이 11년만의 빅컷에 나선 것이다.

국내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활동 중인 거시·금융경제 전문가들은 한은이 그동안 금기시했던 0%대 기준금리를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연준이 제로금리를 도입했지만, 한은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환경을 감안하면 한국의 실효하한 금리는 1%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0%대 금리 진입으로 이런 주장은 힘이 사라지게 됐다. 당장 추가 인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제로금리로 갈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미 이번의 빅컷 이전에 한은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동일한 수준(연 1.25% 수준)이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가 높아야 한다’는 실효하한 금리 개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실효하한 금리는 0%로 보고 있다"면서 "미국이 0%이기 때문에,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은 "현재 상황에서 실효하한 금리는 0%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추후에는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스페인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가격 반등에 대한 우려, 금융안정 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한국은행이 0.75%까지 금리를 낮춘 후 상황을 지켜보려고 할 것 같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더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은 출신인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 0.75%까지는 해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달러가 계속 잘 들어오면 미국과 큰 차이 없이 금리를 내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준금리를 많이 인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많이 내리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0.5%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 수준까지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는 (한은이) 최대한 신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로금리 주장에 대한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미국 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어느 분야에서 문제가 터질지 몰라 전반적인 영향을 주도록 금리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우리 당국이 어느 시장의 문제가 큰지 분석할 수 있다면, 그 시장에 한정해 대출을 늘리는 것도 방안"이라고 했다.

◇"국채 매입 등 양적완화, 아직은 이르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통위에서 은행채를 공개시장운영(채권매입) 대상증권에 포함하기로 했다. 금통위는 "유동성을 충분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중 금리 안정으로 이어지기 위한 미시적인 조치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은은 이같은 유동성 공급 조치가 전면적인 양적완화로 이어지는 것에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도 전면적인 양적완화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준경 교수는 "아직 양적완화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은행이 극도로 대출을 꺼리고 신용 경색이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므로,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이 제로금리를 도입하면서 양적완화 정책을 편 배경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진일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금리를 0%까지 낮추지 못하는 사정이 있으니, 각국의 상황을 보며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채권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이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1.524%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1.0%대)에 비해 0.5%P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채 금리는 시중은행 대출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계 소비 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금융회사 채권운용본부장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채 등 시중금리가 마찰적으로 상승할 요인이 많다"면서 "시중금리 상승은 한은의 0%대 기준금리 효과를 반감시키기 때문에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미시적인 조치를 다양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