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아파트 고분양가 심사기준을 보완하며 분양가를 다소 높여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는 분양가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을 적용하는 탓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또 분양가 규제로 재건축 사업이 늦어지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주택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HUG는 최근 고분양가 심사 기준을 다소 완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심사에 활용하는 비교사업장과 평가사업장의 단지 규모(가구 수), 입지, 아파트 브랜드 차이를 따져 보고, 가중치를 부여해 분양가를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HUG에 따르면 기존 고분양가 심사 기준은 △최근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 최고 분양가의 100% △분양한지 1년 넘은 아파트 평균분양가의 105% △준공한지 10년 이내인 아파트만 있을 때는 해당 사업장의 평균분양가에 주택가격변동률을 반영한 금액 또는 해당 시의 최근 1년 평균분양가 이내 등이다. 현재 서울시 전체와 경기 과천·광명·하남 등이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해당 지역에서 1년 안에 분양한 아파트를 기계적으로 비교 대상으로 선정하는 탓에 단지 규모나 브랜드 가치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자, HUG는 최근 들어 심사기준을 보완했다. 심사 대상 사업장의 가구 수,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 순위에 따른 아파트 브랜드, 대형마트·지하철역·초중고등학교와 거리 등 입지 조건을 따져 가중치를 부여하기로 했다.

재건축사업을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분양가 때문에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들이 HUG와 갈등을 빚는 중이다.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은 조합이 제시한 분양가인 3.3㎡당 3550만원과 HUG가 내놓은 2970만원 사이에서 좀처럼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조합은 일단 HUG와 협의하겠지만, 후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일반분양으로 예정된 물량인 약 4700여가구에 대한 청약을 받는 시기는 2~3년 뒤로 밀린다.

당초 지난해 6월 분양하려던 주상복합 아파트 ‘중구 힐스테이트 세운’은 해를 넘겨서도 분양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들어서는 탓에 주변에 준공한 지 10년 이내인 신축 아파트가 없다. 시행사 등은 단지 규모가 비슷하고 비교적 최근에 분양한 종로구 ‘경희궁 자이’와 비슷한 수준에서 분양가를 HUG에 타진하고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장도 HUG와 분양가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우한 코로나(코로나 19) 사태를 근거로 들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점이라도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HUG와 분양가 협상이 늦어지면 입주자모집공고까지 기한 안에 진행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합은 이달 30일 조합원 총회를 열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후분양으로 전환하면서 당초 계획보다 분양 가구 수가 줄어들거나 작은 면적형만 남은 곳도 있다.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재건축 조합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1+1 분양권’을 추가로 접수하고 1가구도 없던 보류지를 26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그 결과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의 일반분양 물량은 225가구로 이전보다 3분의 1이 줄었다.

현행법상 전체 가구 수의 1%까지 남길 수 있는 보류지 물건은 입주를 기점으로 경매에 부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조합이 정하는 최저금액 이상으로 최고가를 써낸 입찰자가 낙찰받게 된다. 최근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이 진행한 ‘디에이치 아너힐즈’ 보류지 전용면적 84㎡형 두 가구는 각각 27억6000만원과 29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2016년 분양 당시만 해도 12억~14억원대에 분양했던 물건이다.

개포1단지도 보류지를 조합이 임의분양할 수 있는 최대치인 29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역시 보류지가 는 만큼 일반 분양 물량이 줄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위원은 "고분양이 속출하면 주택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동의한다"면서 "1년 이내 분양 사례를 찾을 때는 강동구 분양일 때는 송파구 분양 단지를 참고하는 식으로 연접한 구까지 비교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분양 시점이 2년 이내 등으로 더 멀 때는 물가상승률 등 주택가격 상승분을 보정해서 활용하는 편이 HUG가 산정한 분양가의 합리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들이 산출한 예상 분양가와 HUG가 제시한 분양가의 괴리가 큰 점 등을 보면, HUG의 심사기준이나 비교사업장 선정 등이 현실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자체들이 분양가 심의위원회를 운영 중이라는 점, HUG의 본래 역할은 고분양 사업장에 문제가 생겨 수분양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증하는 것이란 점 등을 고려하면, HUG의 고분양가 심사가 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