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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은 지난해 10월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앨프리드 샌드록 바이오젠 최고의학책임자(CMO)는 "알츠하이머 치매 신약 '아두카누맙'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아두카누맙은 바이오젠이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지난 3월 마지막 임상 3상 시험을 중단했던 약이다. 회사는 아두카누맙을 고용량으로 투여받은 일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서 효능이 있었다며 신약 개발 재개를 선언한 것이다.

국내외 제약사들이 다시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지금까지 개발이 어려워 바이오젠뿐 아니라 화이자·로슈·릴리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임상시험에서 실패하거나 도중 중단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제약사들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는 2050년이면 국내 치매 환자가 27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모니터헬스케어에 따르면 2015년 31억달러 규모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126억달러로 4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美 FDA 허가받은 신약은 4개뿐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병으로, 치매 환자의 60~70%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다. 알츠하이머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병을 치료할 근본적인 약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시판되는 치료제들은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이다.

지금까지 미국 FDA의 허가를 받은 알츠하이머 신약은 4종이다. 에자이의 아리셉트(1996년), 노바티스의 엑셀론(2000년), 존슨앤드존슨의 라자딘(2001년), 머츠의 나멘다(2003년)이다. 이미 나온 약물을 조합한 약들은 나왔지만 새로 허가를 받은 알츠하이머 신약은 2003년 이후 나오지 않았다. 제약사들이 병의 진행을 막을 약을 개발하면 말 그대로 '대박'이 되는 셈이다. 실패 확률이 높음에도 현재 500건 이상의 연구가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오젠은 2007년 스위스 뉴리문이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을 이전받아 아두카누맙을 개발해왔다. 3월에 임상 3상을 중단했지만, 추가로 효능의 근거를 확보해 개발을 재개했다. 지난해 말 바이오젠은 고용량을 투여한 집단의 사고 능력 저하가 대조군보다 23% 덜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인지 기능 저하를 지연시킨다는 의미다. 바이오젠은 지난 1월 화이자의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 물질인 'PF-05251749'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후보 물질은 생체리듬을 조절해 중추신경계(CNS) 질환을 치료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스위스 로슈도 2014년 임상 3상 단계에서 중단했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간테네루맙'을 다시 개발하기 시작했다. 로슈는 지난 2월 임상시험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발표했지만, 개발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 줄기세포·천연 물질 활용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도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 '뉴로스템'을 개발 중이다. 2014년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46명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했다. 메디포스트는 지난 1월 임상 1·2a상을 마치고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2018년 2월 미 FDA로부터 1·2a상 임상시험 승인을 획득하기도 했다. 차바이오텍도 줄기세포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PlaSTEM-AD'를 개발해 현재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차바이오텍은 한국과 미국에서 태반 줄기세포의 제조 방법에 대해 특허를 획득했다. 태반 줄기세포는 신경 손상과 염증 치료에 효과적인 다양한 단백질을 분비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일동제약은 천연물 소재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ID1201'은 멀구슬나무의 열매인 천련자에서 추출한 천연물 신약 후보 물질로, 치매의 주요 발병 원인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할 것으로 기대된다. ID1201은 임상 2상 시험까지 마쳤으며, 치매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고, 염증 유발 물질의 생성을 억제해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회사는 밝혔다. 지난해 8월 식약처로부터 임상 3상 계획 승인을 얻어 후속 개발 작업 준비에 들어갔다.

젬백스앤카엘도 2017년 8월부터 신약 물질 ‘GV1001’의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해 최근 결과가 좋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GV1001은 인간 텔로머라아제에서 유래한 16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 조각(펩타이드)이다. 텔로머라아제는 DNA가 있는 염색체 말단에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는 효소이다. 그 외 항암, 항염증, 항산화, 세포 보호 효과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활용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셀트리온은 아이큐어와 함께 먹는 형태의 기존 약을 패치 형태로 개발해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SK케미칼도 지난해 11월 미국 FDA로부터 치매 치료 패치 ‘SID710’에 대한 판매 허가를 받았다. 현대약품은 기존에 나온 두 약물을 합친 복합 치료제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3상을 승인받아 개발하고 있다.

직접 개발에 나서지 않고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기도 한다. 종근당홀딩스는 지난해 마이크로 RNA를 기반으로 하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와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바이오오케스트라에 50억원을 투자했다. 부광약품도 해외 투자사들과 함께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스라엘의 프로텍트 테라퓨틱스에 투자했다. 개별 투자사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총 투자금액은 360만달러(약 42억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