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 키트는 넘치지만 진단장비는 소수의 외국산만 쓰고 있어 진단 효율 제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진단키트 긴급 사용을 승인 받은 업체는 씨젠 등 4곳으로 1주일 동안 생산할 수 있는 키트는 모두 1만4000여개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4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들 업체가 현재의 3배까지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수준인데다 진단키트 공급에 뛰어드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고, 진단키트의 진단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 그러나 검체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것 외에도 진단 장비가 있는 전문 의료기관에 보내 특이 유전자 검출 및 확진 판정까지 감안하면 여전히 최소 6시간 이상이 걸리고 있다. 진단 장비의 국산화가 의료 현장의 효율을 제고하는 데 관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남병원 일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12일 현재까지 국내에서 22만7129명이 우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 중 7869명이 양성 판정(양성 판정률 3~4%)을 받았으며 검사가 진행 중인 1만7727명을 제외하면 20만9402명은 음성 판정을 받아 일상 생활로 돌아갔다. 그나마 단기간에 많은 검사가 가능했던 것은 진단키트가 넉넉한 덕분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단키트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곳은 씨젠, 솔젠트, 코젠바이오텍, SD바이오센서 등 국내 4개 업체다. 진단키트 1개당 가격을 약 1만5000원으로 잡으면 현재까지 총 29억원 이상의 검사 금액이 국민 세금으로 쓰였다.

가장 먼저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진단키트는 코젠바이오텍 ‘파워체크’다. 파워체크는 24시간 걸렸던 기존 진단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했다. 현재까지 7만5000건의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약을 생산해 50여개 국내 의료기관에 공급했다.

씨젠은 두 번째로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씨젠 진단키트 ‘올플렉스’는 특이 유전자를 모두 검출할 만큼 검사 정확도가 높고 검사시간도 4시간 정도다. 솔젠트와 SD바이오센서도 최근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두 회사 진단키트는 타 진단키트처럼 의심 환자로부터 검체를 채취해 우한 코로나 유전자를 검출하는 체외진단용 기기다. 샘플 채취 후 분석까지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이 시행 중인 감염병 검사는 이번 우한 코로나 유행으로 '실시간 유전자 검출검사(PCR)'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존 '판코로나바이러스검사'는 보건소 또는 병원에서 채취한 환자의 침이나 가래를 질병관리본부로 보내 DNA를 증폭하고, 이 DNA를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와 대조해 일일이 염기서열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단해 하루(24시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PCR 도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실시간 PCR검사는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에만 존재하는 바이러스 특이 유전자 2개를 실시간으로 증폭한 뒤 검출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별도의 DNA 증폭과 대조가 필요 없이 최종 확진판정까지 약 6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하지만 문제는 검체 채취 및 키트 사용 자체만으로는 약 2~3시간 정도 걸리지만, 특이 유전자 검출 및 이를 분석하는 진단 장비로 소수의 미국산 기계만 사용돼 판정까지 검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힘들다는 데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진단시약에 대해선 긴급사용승인을 한시적으로 허용했으나, 진단 기계에 대해선 별도의 조치를 내리지 않아 기존에 등록된 제품만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식약처는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의료법, 혈액관리법 등 여러 법령을 기초로 유전자 증폭 때 쓰이는 장비를 허가한다. 식약처의 진단 기기 허가 절차는 임상시험자료 유무에 따라 최소 65일부터 최대 80일 간의 자료심사를 거쳐서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허가 절차 후 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제품은 외국 장비(ABI7500과 바이오래드)와 그 스펙에 맞는 진단 장비들 뿐이다. RNA 정제과정과 DNA 증폭과정, 증폭 DNA의 분석과정을 거치는데 바이오니아·아람바이오·미코바이오·진시스템 등 국내 업체들도 관련 장비를 개발한 상태다. 진시스템의 경우, 현장에서 3시간 정도 걸리던 진단장비 사용시간을 40분으로 단축시킨 장비를 개발했다. 무게 3.2㎏의 소형 장비에 진단키트를 장착하면 현장에서 쉽게 확진 판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절차를 따르려면 임상 성능 시험 안전성, 정확도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기준을 넘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어 당장 사용이 힘든 실정이다. 질본 관계자는 "진단시약은 식약처가 한시적으로 긴급사용승인을 허용했으나 진단 기계는 증폭효율, 범용성, 반응특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우한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제조허가, 제조 인증을 받은 기등록 제품 위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방역당국의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진시스템 관계자는 "현재 널리 쓰이는 진단 장비는 크고 무거워 전문검사기관과 대형병원에서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중국 일본에서 이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품질 검증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