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은 이미 메르스 사태를 훌쩍 넘어 IMF나 글로벌 금융 위기에 비견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상품권 뿌리기 같은 총선용 선심성 정책에 머물러 있다. IMF 사태 등을 경험했던 전직 경제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긴급 처방이 필요한 분야는 규정·규범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하고 충분하게 지원해 일시적 충격으로 망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①업종·규모·절차 따질 때가 아니다

정부가 위기 대책을 백화점식으로 쏟아내지만,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체감을 못 하겠다며 아우성이다. 이철 한국외식업중앙회 기획홍보국장은 "외식업주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가 많아 대출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박종덕 한국학원총연합회장은 "소상공인 저리 융자 지원을 받으려면 직원 5인 미만이어야 하는데 상당수 학원이 직원 5~10명 정도로 운영돼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이병윤 한국전시주최자협회 전무는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운송업, 공연업 등 4개 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는데, 전시업은 관심이 적다 보니 사각지대에 놓여 혜택을 못 받는다"고 토로했다. 박평재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금 도금 업계를 비롯해 뿌리 산업 중소기업은 직원 월급 줄 자금이 없다"며 "정부의 정책 자금은 심사에만 두 달 걸리는데 그동안 우린 말라죽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금은 일종의 전시 상황"이라며 "다소 낭비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원을 해주는 게 옳다"고 했다.

텅빈 인천공항… 항공협회 “6월까지 최소 5조 피해” -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한산하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한국인 입국 제한국이 늘면서 국적 항공사 여객기의 80%가 멈췄다. 한국항공협회는 올해 6월까지 국적 항공사 피해액이 최소 5조87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항공뿐 아니라 관광·전시·학원 등 여러 업종의 매출이 평소의 10%로 폭락하며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졌다.

②감세, 부채 동결 같은 파격 대책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경제 부처에 요구했다. 전문가와 현장에서도 저금리 대출 확대, 임금 일부 보전 같은 뻔한 대책에서 벗어나 감세, 보조금 지원, 부채 동결 같은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금 정부가 기업에 지원해준다는 정책 자금은 공짜가 아니라 결국 다 갚아야 하는 대출"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더라도 경기가 제대로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차라리 법인세, 사업소득세 등 세금을 감면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위기 업종에 최근 3개월간 매출을 운영 자금으로 지원하고, 부채를 동결해 이자 부담을 줄이는 식의 비상조치를 고려할 만하다"며 "기업이 세금을 못 낼 지경이라면 작년에 냈던 세금을 일부 돌려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③직격탄 맞은 항공업계, 9·11수준 지원을

전문가들은 9·11이나 IMF 같은 비상사태에 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코로나 발병 이후 노선 80%가 운항 중단된 항공 업계에서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정부의 지원과 비슷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9·11 당시 여객기 테러 공포가 확산하고 각국 보안 정책이 강화되면서 여행객 수요가 급감해 2002년 월드컵 직전까지 항공 업계가 위기를 맞았다. 이때 정부는 시중금리와 같은 4~5% 금리에 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무담보 자금 대출을 지원해줬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은 "항공사에 직접 보조금이나 감세 혜택을 줘야 한다"며 "항공 업계가 당장 망하게 생겼는데 재정 건전성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④서비스업 대책이 더 시급하다

정부의 코로나 대책은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소비 쿠폰 등 주로 제조업 대책에 치중돼 있다. 하지만 전직 경제 관료들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대책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질 것"이라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결국 내수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신 전 위원장은 "서비스업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현금 살포' 수준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연극·영화 관람 쿠폰을 국민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예로 들었다.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은 "가전제품은 미뤘다가 나중에 살 수 있지만, 서비스업 수요는 미뤄지는 게 아니라 소멸돼 타격이 더 크기 때문에 정부 대책도 이 분야에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