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한 코로나 사태로 급락한 증시 방어를 위해 공매도(空賣渡) 제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매도란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 기법이다. 증권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과대 평가된 주식의 거품을 빼는 순기능도 있지만, 주가 하락 국면에서는 투기 세력이 가세해 실제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세계 증시 폭락 사태가 벌어진 다음 날인 10일 아시아 증시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의회와 세금 감면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힌 뒤 미국 증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대부분의 아시아 증시가 반등한 것이다. 코스피도 전일 대비 0.42% 오른 1962.93으로 장을 마감했다. 사진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황소상 앞에서 사람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황소는 주가가 오르는 강세장을 상징한다.

하루 공매도 1조에 놀란 정부 "과열 종목 2주간 공매도 금지"

최근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우려와 유가 급락으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면서 공매도 거래 대금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일 코스피시장 공매도 거래 대금은 8933억원, 코스닥시장은 1863억원으로 2017년 5월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종목별로는 삼성전자가 1711억원으로 전체 코스피 공매도 거래 대금의 약 20%를 차지했다.

정부는 공매도 급증에 따른 시장 불안을 줄이기 위해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요건을 강화하고, 공매도 금지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현재는 주가 하락률이 5% 이상이고 공매도 거래 대금이 평소보다 코스피는 6배, 코스닥은 5배 이상 증가할 경우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는데 거래 대금 증가율 요건을 코스피는 3배, 코스닥은 2배로 낮췄다. 주가가 20% 이상 하락한 코스피 종목은 거래 대금 증가율이 두 배(코스닥은 1.5배)를 넘을 경우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또 현재는 1거래일인 과열 종목 주식의 공매도 금지 기간을 10거래일(2주)로 대폭 늘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개인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달래는 효과는 있겠지만, 주가 하락 방어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공매도로 인해 주가에 큰 영향을 받는 일부 소형주에 한해선 효과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매도가 삼성전자 등 대형주에 집중돼 있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과거엔 공매도 전면 금지해도 코스피 하락

일각에선 공매도 거래를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지금은 코로나로 전체적인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등 불안 심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어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당시 두 차례 시행됐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그해 10월 1일부터 이듬해 5월 31일까지 8개월 동안 전 종목의 공매도가 금지됐다. 유럽 재정 위기 당시엔 2011년 8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3개월간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금지됐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주식 시장의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SK증권에 따르면 2008년 공매도 금지 기간에 코스피는 3.4% 하락했고, 2011년에는 12.1%나 떨어졌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결과에서도 2008년 공매도 금지 조치가 증시 변동성 축소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KDI는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직후 시행된 공매도 금지 조치는 주식 가격의 변동성 확대를 축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또 "주가 하락의 억제 측면에서 공매도 금지의 정책적 효과는 일부 달성했지만, 공매도 금지가 주식의 공정가격 형성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가 도출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