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러시아 '유가전쟁'에 국제유가 20% 이상 폭락
"유가 배럴당 30달러 전망…20달러 붕괴될 수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선언하면서 9일(현지시각) 국제유가가 20% 이상 폭락했다. 우한 코로나(코로나19) 공포로 석유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공급을 줄이지 못하면서 당분간 저(低)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선에 거래되고, 최악의 경우 2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사.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4.6%(10.15달러) 급락한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1991년 걸프전쟁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브렌트유도 배럴당 24.1%(10.91달러) 미끄러진 34.36달러에 마감했다.

한국석유공사는 "국제유가는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과 비회원국 간 협의체)의 회의 결렬 이후 주요 산유국이 유가 하락을 감수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유가 전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회의에서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은 오는 2분기 하루 평균 150만배럴을 추가 감산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했으나,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합의가 불발됐다.

이에 사우디는 증산과 가격 할인으로 맞대응했다. 사우디는 4월부터 원유 수출 가격을 대폭 내리고, 산유량을 하루 평균 970만배럴에서 1000만배럴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산유국의 ‘가격 전쟁’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석유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되면서 올해 유가 하락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OPEC와 러시아의 가격 전쟁이 본격화됐다"며 "상황은 2014년 가격 전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브렌트유가 2~3분기 최대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올해 2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배럴당 57.5달러에서 35달러로, WTI 가격 전망을 배럴당 52.5달러에서 30달러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전 세계 석유 관련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국내외 정유업계는 이미 지난해 정제마진 악화로 실적이 부진했는데, 올해는 석유 수요 부진에 유가 폭락까지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릴 전망이다. 미 셰일산업의 중심지인 텍사스주(州)는 물론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브루나이,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중국발(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무실·학교가 문을 닫고 항공 운항이 줄면서 석유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올해 1분기 석유 수요가 하루 380만배럴 줄어 사상 최대 감소폭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도 올 상반기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21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일 발간한 월례 석유시장보고서에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여행과 무역이 위축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면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작년보다 하루 평균 9만배럴 줄어든 9990만배럴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했다.